네르하 : 발코니와 웰컴 드링크, 파라도르

스페인을 담은 창, 파라도르

by 윤해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어느 숙박 공유 플랫폼의 캐치프라이즈처럼. 스페인의 아파트를 빌려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여행도 상상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살아보기에는 내 여행이 너무나 짧다는 것. 여행객을 위한 편의성과 스페인의 감성을 둘 다 담고 있는 그런 호텔은 없을까? 그런 호텔이 바로 파라도르였다.


파라도르는 스페인의 국영 호텔 체인으로 주로 역사적 건물을 개조해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도시의 파라도르가 굉장히 좋은 입지를 선점해 멋진 뷰를 자랑하고 있었다.


애초에 발코니를 찾아 떠난 스페인 여행이었기에 이 점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여행지에서도 실내를 사랑하는 내향적인 술꾼에게 뷰가 좋은 발코니란 최고의 술 안주다. 게다가 방문객에게 웰컴 드링크 쿠폰을 지급하고 있었기에 예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네르하, 론다, 코르도바 총 세 군데의 파라도르에 머물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네르하에서 처음 파라도르를 만났다. 해변 절벽 위에 위치해 로비와 객실에서 모두 지중해가 내려다 보였다. 영리하게도 식당의 절반은 야외 테이블로 이뤄져 있었다.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니 왠지 보글보글한 마음이 들어 웰컴 드링크는 맥주로 골랐다. 따뜻한 햇살 아래 맥주의 탄산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낮에는 발코니에서 까바를 마시며 햇볕을 만끽했고, 밤에는 맥주를 마시며 파도 소리를 들었다. 절벽 아래 해변까지 단숨에 내려갈 수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어 틈만 나면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아침 해가 뜨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조식을 먹었던 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눈이 부시다 못해 멀어버릴 것 같은 따뜻한 태양을 만났다.


론다의 파라도르는 평온했던 네르하의 파라도르와는 사뭇 달랐다. 론다의 상징적인 다리인 누에보 다리 바로 옆 절벽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협곡을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뷰를 자랑한다. 이 협곡에는 까마귀 떼가 날아다녔는데 다리의 으스스한 역사와 맞물려 스산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록 나는 호텔의 웰컴 드링크를 고르는 거지만, 중세 배경의 드라마에 들어온 것처럼 어딘가 진중한 느낌이 드는 레드 와인을 마셨다. 론다 파라도르가 진중한 느낌만은 아니었다. 이후 글로도 풀어내겠지만 나는 론다에서 인생 로제를 만났는데, 파라도르 바로 옆에 위치한 맥도날드에서 샐러드를 사 와 발코니에서 로제를 마셨다. 파라도르는 이렇게 멋지고도 편리하다.


코르도바의 파라도르는 실수로 들르게 된 곳이었다. 여행 일정을 잘 못 계산해 스페인에 하루 더 머무르게 되었는데 세비야에서 마드리드까지 올라오는 길에 있는 아무 도시나 고른 게 코르도바였다. 코르도바의 파라도르는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과거 왕의 여름 궁전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높기 때문에 실제로 서늘하기도 했고 코르도바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왕의 여름휴가를 떠올리며, 내 휴가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화이트 와인을 웰컴 드링크로 마셨다. 특히 밤의 발코니가 굉장히 화려하고 멋졌다. 세비야에서 구매했던 홍합 통조림과 론다에서 공수해 아껴뒀던 로제 와인을 마셨다. 여행의 마지막 밤에 이토록 어울릴 수 있는 숙소가 있다니.




나처럼 내향적인 술꾼이라면 아마도 파라도르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반갑게 맞아주는 웰컴 드링크가 있고, 멋진 뷰와 발코니가 있는 곳. 가장 스페인다운 장면들을 액자에 담아내어 전시회를 연다면 그게 파라도르일 것이다. 심지어 작품을 만질 수도 있고, 술도 함께 제공된다니.


살아보는 여행은 아니지만, 파라도르에서는 스페인의 하이라이트를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치 내향적인 술꾼만을 위한 도슨트가 곁에 있는 전시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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