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 2월의 호텔 수영장

호텔 수영장 전세 내는 방법

by 윤해

세비야답고 낭만적인 호텔을 찾아 호텔 알폰소 13세에서 묵기로 했다. 호텔 알폰소 13세는 1929년 세비야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곳으로, 무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화려한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로비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문을 열면 나타나는 엘리베이터는 탈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해 줬다.


하지만 이 호텔을 예약한 진짜 이유는 수영장이었다. 숙소 예약 플랫폼에서 본 수영장 사진에 한눈에 반했다. 고풍스러운 연노랑빛 호텔을 바라보는 수영장이라니. 게다가 깊이 1.3m에 충분히 넓어서 제대로 수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풀바도 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수영 후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마시는 와인은 얼마나 개운할까.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2월의 안달루시아는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다. 스페인이라는 환상에 눈이 멀었는지, ISTJ 답지 않게 계절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상상 속 세비야보다는 추웠다. 사시사철 운영하는 한국 호텔 수영장에 길들여진 나는 손을 살짝 담가보았다.


애플 워치에 선명한 글씨가 떠올랐다. 수온 17도.


멀리 한국에서 이 수영장을 꿈꾸며 날아온 자의 입장도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까지 와서 수영을 해보지 않는다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의지의 한국인들은 17도의 수영장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는 팔 벌려 뛰기를 했고, 짝꿍은 팔 굽혀 펴기를 했다. 맨발로 뛰니 발이 시렸다. 아무도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아 바닥이 미끄럽지도 않았다. 몸을 조금 데운 후 조심해서 입수했다. 처음엔 자유형을 한 바퀴 돌았다. 자유형은 정수리 끝까지 시려서 머리를 내밀고 헤드업 평영을 했다. 턱 끝에 닿는 물도 차가워서 결국 배영을 하려고 누웠다.




파란 하늘, 오렌지 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호텔 알폰소 13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 이러려고 세비야에 왔구나.


수영을 마치고 썬베드에 누웠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풀바는 닫혀 있었다. 수영 후 와인은 없었지만, 일 년 중 가장 조용한 수영장을 만끽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전세 낸 기분으로. 수영하기에 틀린 계절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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