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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과 지드래곤

by 윤 log

내가 TV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14년 2월에 종영한 전지현, 김수현 주연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다.

첫째 아이가 13년 12월에 태어난 후 딱 두 달까지, 그 이후엔 TV를 자체적으로 멀리했던 것 같다.

아이를 돌보면서 몸도 힘들고 밤 낮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었다.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이런 패턴은 두 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 덕분에 더욱 굳어졌다.

이렇게 점점 멀리하다가 흥미도 잃었고 누군가 어떤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해도 그다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만큼은 놓칠 수 없지. 바로 <무한도전>

일명 ‘무도빠’인 나는 무한도전 하는 날만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토요일 저녁 6시는 사수하며 TV앞에

딱 앉아 두 손바닥을 활짝 펼치며 ‘무한~~ 도전!!’을 외치는 멤버들의 오프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육아에 지친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달래주고 긴장 없이 온전히 마음껏 웃으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는 건 나에겐 그냥 예능을 보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무한도전이 종영할 거라는 세간의 여러 소문들과 추측들이 있었지만 난 부정하고 싶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라며.. 온몸으로 막고 싶었다. 나에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의미이기에.

실제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종영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나의 10년 지기 친구를

잃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내 추억의 상자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난 무한도전 멤버 중 정형돈을 좋아했다. 방송 중에 툭툭 내뱉는 그의 행동과 말, 그 바이브가 너무 웃긴데

왜 자꾸 사람들은 못 웃긴다고 할까..?

라는 생각을 하던 중 그가 어느새 지드래곤이라는 대어를 낚아챘다. 아주 자연스럽게.. 바로 무도 가요제에서! 전설의 ‘형용돈죵’을 탄생시킨 둘의 케미는 지금까지도 여러 영상이 회자되고 있다. 그때도 그렇게 웃겼었는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 가끔 문득문득 생각날 때 그들의 브로맨스를 보고 있자면 왜 아직도 내가 다 설레는지. 무한도전이 더 이상 방영되지 않고 빅뱅과 지드래곤도 차츰 활동이 뜸해지면서 둘이 같이 있는 그림은 나의 추억 속에,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은 자물쇠로 아주 꽁꽁 닫힌 보물상자에서 꺼내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2024년 연말 즈음,

무도의 김태호 PD님과 지드래곤의 콜라보로 <굿데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 방송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진짜로?!!!! 그렇게 그리워했던 둘을 볼 수 있다고...?

굳게 닫혀있던 나의 추억의 보물상자가 살짝 빛을 내며 다시 반짝거리는 게 아닌가, 진짜 너무 보고 싶었던 둘의 온기! 본방송이 나오기 전 예고편을 몇 번씩 돌려보며 훌쩍 지나버린 11년이라는 시간이 금세 무색해짐을 느꼈다.


드디어 2월 첫 방송!

기다리고 기다렸던 둘의 모습을 한눈에 그것도 TV에서 볼 줄이야. 정말 감개무량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당시 풋풋했던 모습과 달리 이젠 그때의 정형돈 나이가 된 지드래곤과 또 다른 힘든 나날을 이겨내고

방송에 출연하는 정형돈의 모습에 코끝이 시큰하고 마음이 찡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살짝 설레면서 덤덤한 척하는 얼굴에 반가움이 한가득 들어차있는 둘.

먼 훗날 이렇게 다시 만난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을까.



그런데 첫 만남의 장소가 다름 아닌 동묘라니! 지디의 패션을 지적하며 물오른 예능감을 보여줬던 정형돈과 힙합 비둘기의 미친 애드리브로 내 최애 무한도전 짤을 만들었던 바로 그곳. 동묘시장에 지드래곤 골목이 생겼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컸던 둘과 셋의 케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크으~



최근 3월 9일 방송에서

둘의 두 번째 만남은 좀 더 편안하게 장난도 치는 모습이라 더욱 보기가 좋았다. 같이 있었던 데프콘과도

스스럼없이 투닥투닥하며 대화하는 걸 보니 어느새 또 그들만의 영역 안으로 추억 소환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또 하나!

빅뱅 멤버인 태양의 콘서트를 마치고 게스트로 출연 후 태양, 대성과의 대화에선 진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올 타임 레전드, 슈퍼스타 GD는 안중에도 없는 태양과 대성은 어쩜 그리 해맑게 쉴 틈 없이 <굿데이>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선곡하며 재밌는 아이디어를 쏟아내는지.. 진짜 오랜만에 정신없이 웃었다. 빅뱅멤버 중 태양과 지디를 좋아했는데 내가 왜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왜 끌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ㅋㅋㅋ

해맑은 눈과 표정으로 어쩜 그리 웃긴 멘트를 날리는지. 댓글만 봐도

‘태양이 이렇게 웃길 줄 몰랐다, 회의고 뭐고 서로 드립 치기 바쁘네, 맑은 눈 도른 자(약간 미쳤다는 말의 신조어?), 콘서트를 뒤집어 놓고 저런 고삐 풀린 대화를 주고받다니…'. ㅎㅎㅎ

지드래곤도 둘의 이런 모습에 ‘역시 난 팀이었어, 우리 멤버들 밖에 없어!’라는 다정한 멘트를 하며 신나게 웃는 얼굴이 정말 편해 보여서 나까지 기분 좋았다.




한번 내 사람이 되면 끝까지 이어간다는 지드래곤의 인성이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나이 들어서도 형돈&지디 / 지디&태양&대성의 케미는 쭈욱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을 쓰려고 따로 모아둔 나만의‘형용돈죵’ 유툽 재생목록을 보면서 또 한참을 흐뭇해하며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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