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 남자들의 세계
첫째는 아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다.
남자아이라서 자동차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첫 장난감 선물로 ‘타요’ 만화에 나오는 경찰차를 선물했던 게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2~3살 즈음.
이 선물을 받고 좋아하던 아들의 표정도 어렴풋이 스친다. 그 후로도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마트에 가면 토미카나 핫휠에서 만든 미니카를 모으는 게 어느새 취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남자아이니까 당연히 좋아하겠지 하며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선물로 또 소소하게 미션을 수행하고 고르는 선물들 모두 자동차와 관련된 것들만 골랐다. 남자아이는 자동차, 공룡 아니면 우주에 빠진다 라더니 울 아들은 자동차구나.
하며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토미카는 하나 둘, 점점 쌓여 가고 있고 레고도 자동차를 조립하는 레고만 샀다. 아직 뭘 모르는 둘째도 오빠가 마트에서 토미카를 고르면 자기도 따라 하느라 핑크색 자동차를 사기도 했다.
자동차에 특화된 본능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의 시너지는 자동차 그림으로 이어졌다.
자동차 그리는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고 미술대회에 출품해보기도 했다. 엄마지만 내가 봐도,
또 주변사람들도 인정해 주는 (따라 그리는 거지만) 그림실력으로 일주일에 꼭 한 번씩 열심히 하는 모습에
기특하기도 했다. 그래 좋아하는 거 열심히 그려서 그림 실력도 키우고 좋다!
차를 타고 온 가족이 외출을 할 때면 아빠와 아들은 온통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얘기뿐이다.
저 차는 라이트가 왜 저 위치에 있냐 라던지, 성능이며 디자인, 배기량, 출시연도 등등 끊임없는 대화에
딸과 나는 혀를 찰 노릇이다. 가는 길에,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들의 못 말리는 자동차 사랑은 라이트만 봐도 기가 막히게 차종을 알아낼 정도이다.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자동차 휠만 봐도 어떤 차인지 알아맞추는 신기한 재능, 타고 난 걸까? 앗, 아니길… 모르겠다.
그렇다.
콩심은 데 콩 나지 콩 심은 데 팥이 나올 리가 없다.
그 아빠에 그 아들인 것이다.
남편이 그림에도 좀 소질이 있고 자동차도 좋아하는 것이다. 완전 백퍼 몰빵 유전자!!
남편이 자동차에 관심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제법 머리가 큰 아들과 같이(남자끼리) 좋아하는 걸 공유하면서 본인도 몰랐던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다.
내 걱정의 시작은 재 작년, 아들이 4학년 말쯤부터였던 것 같다.
남편이 스리슬쩍 아들에게 F1 그랑프리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들에겐 이건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세계나 마찬가지. 자동차의 끝판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싱 경기를 맛본 것이다. 물론 처음엔 아빠랑 같이 보니까 알아서 적당히 보여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보라고 해주었다. 하지만 그다음 해인 작년부터는 아들이 미리 대회일정을 검색해서 매주 어느 나라 트랙에서 하는지, 어떤 선수들이 출전하는지 다 꿰고 있는 것이다.
별로 알고 싶지 않지만 매일 입에 달고 사는 아들 덕분에 선수들 이름들이 이젠 내 귀에 천연덕스럽게 붙어있다. 막스 베르스타펜, 페르난도 알론소, 루이스 해밀턴… 등등.
이들 중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페르난도 알론소. 아들은 '레이싱계에선 이제 은퇴해도 될 만한 연장자인데 아직도 선수 생활을 하는 게 참 대단해'라면서 혀를 차며 칭찬을 한다.
“그래.. 뭐든지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건 대단한 거지”라고 얘기했지만
‘네가 이걸 계속 좋아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숨은 의미는 절대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빠와 같은 취미를 가지는 건 좋은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말해 그냥 자동차가 돌고 돌고 돌고 있는 화면을 1시간 동안 보고 있는 걸 쉽사리 인정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성격도 급한 편이고 바깥 활동이 적은 아이인 데다 다른 매체로도 이미 시력이 안 좋아지고 있는데 매주 눈 돌아가는 영상을 보고 있는 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부자가 사이좋게 손 붙잡고 매주 축구장을 몇 바퀴 돌고 온다면 모를까.
야구도 좋아하고 축구 중계도 놓치지 않고 보는 남편. 올림픽 시즌이면 올림픽 경기를 테니스 경기가 열리면 테니스를.. 온갖 스포츠를 즐기는 그 이지만 오로지 눈으로, TV로만 즐긴다. 아빠를 쏙 빼닮은 아들도 이미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어서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이 좀 더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해보고 나와 다른 친구들도 많이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단짝 친구도 자동차면 죽고 못 사는 친구이기에. 그래서 둘이 죽이 척척 맞는다.
매일 영상을 통해 영어 인풋을 늘려주려 남매에게 1시간씩 넷플릭스를 보여주는데 이제 아들은 7시리즈까지 나온 F1 선수들의 다큐멘터리인 ‘본능의 질주’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영어 영상물을 접해야 하니까 눈 딱 감고 참아 준다. 아들!
올해로 인생 13년 차.
뇌구조로 봤을 때 이미 자동차로 70% 정도의 분포율을 자랑하는 아들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심히 걱정되기도 또 궁금하기도 하다. 올해 지난주부터 시작된 F1 그랑프리. 엄마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감지한 듯 먼저 보는 횟수를 줄이겠다고 해서(타협안 하면 아예 못 보게 될까) 조금은 안심이지만, 초등생활 마지막 1년 돌아오지 않을 이 시기에 공부에도 살짝 정성을 쏟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부디 나중에라도 직접 레이싱 하고 싶다는 말은 절대 내가 듣지 않길 바란다.
절대로.. 가슴깊이 뼈저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