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 향이 내 코를 간지럽힌다. 또 간접적으로나마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고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런 공간적인 느낌을 사랑한다.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수다만 떠는 공간을 넘어 미팅이나 스터디, 독서, 혼자 노트북 들고 공부도 하고, 심지어 뜨개도하는(내 취미이기도)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것 같아 내 입장에선 아주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3. 4일 화요일
길고 긴 아이들 겨울방학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개학을 했다. 이렇게 신날 수가.. (음소거 소리 질러)
아이들도 새로운 마음인지 깨우자마자 일어나서 아침밥 먹고 어제 필요한 준비물들 가득 담고 있는 뚱뚱이
책가방을 메고 나처럼 개학을 반기기라도 하듯 하늘하늘 떨어지는 눈발을 맞으며 등교를 했다. 이제 내 가방을 꾸릴 시간. 간단히 요기만 하고 시꺼먼 노트북 가방에 늘 그래왔듯 장비들을 챙긴다.
노트북, 충전기, 마우스패드 그리고 샤프, 볼펜, 만년필 등등 좋아하는 문구류 다 넣을 수 있는 두 칸짜리 통통이 필통에 귀여운 마우스와 이어폰도 툭 넣고... 오늘은 쌓여있던 사진첩도 정리하려 외장하드도 챙겼다. 카페 사장님과 간단히 스몰 토크를 한 후 왜 이제 왔냐며 반겨주는 듯, 빈 테이블의 구석자리로 가서 바리바리 가지고 온 짐들을 하나씩 푼다.
카페 나들이는 마치 해외여행을 다니는 기분이다.
커피 한잔 마시고 쿠폰이 하나씩 생길 때면 여권에 도장 하나씩 찍어주는 것 같고, 카페 사장님과 눈인사하며 주문한 커피를 결제할 때면 호텔에 체크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담 난 로비에서 달달한 바닐라 라테를 마시며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노트북 뚜껑을 열고 작성하던 메모장을 띄워 주저리주저리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열정적인 프리랜서이자 커리어우먼 이면서 세상 힙한 사람이다.(이런 이야기를 영어로 쓰고 있다면 더 좋았겠다. peace!)
자고로 카페 죽순이라면 거기 커피맛은 어떻고 가격대비 괜찮은지 분위기는 어떤지, 특징들을 꽤고 있어야 한다. 또한 카공족이라면 콘센트 자리가 어디에 있고 콘센트 꼽는 방향도 정확히 한 번에 성공해야 된다. 그래야 뿌듯하니까! 몇 번이나 헛 손질하면 안 된다. 이건 괜한 자존심이다. 나만 그런가?
동네 카페가 좋은 이유는 사장님과 눈도장을 찍어 놓으면 약간의 정성이 더 첨가된 커피를 만들어 주시는 것 같다. 오늘은 시나몬 가루를 톡톡 더 뿌려주셨다.
카페투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그 썰을 풀어보자면)
작년, 11월 어느 금요일
매주 금요일 인지는 모르겠지만 늦은 오후, 이 시간 즈음에 한 초등 여학생이 가방을 메고 2층으로 혼자 들어온다. 과외를 받는 것인지 조금 이따 선생님이 오시면 안부도 묻고 얘기도 하며 공부를 하는 것 같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 내가 앉는 구석자리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먼저 오늘 할 공부거리를 꺼내 놓고 선생님을 기다리며 혼자 노트정리를 하는 듯 보인다. 둘째 딸내미와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 같은데 혼자서 가방을 챙기고 여기까지 오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혼자만의 밑거름이 단단하게 다져지게 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될 이쁜 아이. 노트북 너머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말 기특하고 이뻤다.
흠..... 딸아...?????!!
작년, 여름 즈음 할리스에서
우리 동네 할리스는 한쪽 벽에 1인용 테이블이(조명도 딸려있는) 병렬로 위치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안쪽 구석 제일 넓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앞 세 군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른 곳에 자리 잡으면 점심시간 즈음 주변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의 수다 폭격을 방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날은 2번째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구석자리를 매의 눈으로 노리고 있었다. 얼마 후 내 앞 테이블에 어떤 남자분이 노트북을 세팅한 후 주문한 샌드위치를 들고 왔다. 그런데 샌드위치가 어느새 스테이크로 변한 건지 나이프로 빵을 쓱-쓱-하며 열심히 자르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런 후 쩌업-쩝 맛있게 먹는 소리까지 이어지더니 카페 안쪽을 바라보며 몸을 반쯤 돌리더니 야무지게 입을 오물거리는 옆모습을 보게 하는 게 아닌가!
여기 카공족 자리는 테이블이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딱 붙어있어서 앞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볼 수 있을만한데 이런 식의 자세라니.. 그렇게 자기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마치 내 인내심을 시험하기라도 하듯 그의 칼질은 계속되었다. 아.. 아..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저렇게 맛있게 드시고 계시니 언제 일어날지 몰라 그냥 내가 짐을 다시 싸서 우리 단지 카페로 갔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은 지켜줬으면 좋겠다.
작년, 또 다른 어느 날
오늘은 투썸에 자리를 잡고 평소처럼 영어강의를 듣고 정리하며 노래도 듣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딱 한 분이 한눈에 쑥 들어왔다.
4명의 일행 중 유독 앉은키가 커서 탁 눈에 뜨였던 여자분의 목소리였다. 난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기억 못 하는 병? 이 있는 반면, 누군가의 얼굴 생김새나 분위기, 목소리 등을 매칭하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자부하는 편인데..(잠복근무의 짬이 여기서 나오는 군;) 마침 나의 레이더망이 가동됨과 동시에 우리나라 '배구 여제'인 김연경 선수의 얼굴과 목소리의 주파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걸 직감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김연경 선수가 옆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목소리나 억양 저음의 톤이 정말 비슷했다.
평소에도 닮은 사람들끼리는 성격이나 목소리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바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언뜻 봤지만 하얀 얼굴과 긴 단발머리, 키는 굳이 안 봐도 다른 사람들보다 얼굴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목을 뒤로 꺾어서 올려다보아야 할 신장 사이즈라고 추측할 만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하던지 카페 2층의 공기가 출렁거리듯 울렸다. 어떤 얘기를 주고받는지 듣고 싶지 않아도 다 잘 들렸고 약간의 불만 섞인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살짝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김연경 선수가 옆에 있다면 이런 분위기겠구나, 하며 다시 내 시간에 집중했다. 다행히 그들은 짧고 굵게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오늘 아이들 학교 개학 첫날.
이제 다시 시작된 올해 카페 업무일지는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질지 벌써부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다.
하루하루 덧 없이 흘러가지 않게 루틴을 차곡차곡 잘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건 이제 나의 글을 열심히 쓰는 일이 생겼다. 뭐가 되든 될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갈 곳을 정하고, 루틴이 있음과 없음의 차이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대답해 줄 것이라 믿으며 내일도 난 멋진 여행길에 기꺼이 몸을 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