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남편이 상주하고 있다. 1년 365일. 이게 가장 큰 이유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출퇴근하던 남편이 이젠 집에서 5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집안일이라도 혼자 있을 때 해야 잘 되는 나로서는 답답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 초반에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잠깐씩 일 하다가 빼꼼히라도 나와서 애들 봐주니 의지되기도 했었고.. 사실 온전히 혼자 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 많았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때면 만약 남편이 출근했었더라면 한 명은 안고, 한 명은 손잡고 데리고 가야 하겠지만 집에 누군가 상주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 생활도 벌써 5년째.. 그러다 보니 나 혼자만의 시간은 이제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의 시간밖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낮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잦아지고 그러다 보니 집에서 탈출한 느낌. ‘아 이거지!! 너무 자유롭다’라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한 번 고삐가 풀어지니 이젠 말 안 듣는 망아지처럼 자질구레한 집안일은 뒤로 한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바로 가방 싸서 나가는 루틴이 생겨버린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꼴이던 게 점점 재미가 붙어서 이제는 매일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동네 카페에 오늘은 어디로 갈지, 아예 요일 코스를 지정했다. 우선, 첫째보다 일찍 하교하는 둘째 학교 스케줄에 맞춰 루틴을 짠다.
(2024년_초등3학년 기준)
월요일. 방과 후 수업이 없어 1시 50분에 하교.
되도록 집에서 멀리 가지 않고 우리 아파트단지 주민카페나 5~6분 걸어 옆 단지 상가에 있는 카페에 간다. 우리 단지 주민카페는 새로운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독서실처럼 6개의 책상이 있고 자동 커피머신이 있지만 집에서 제조한 커피를 가지고 가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단지 헬스나 요가하시는 분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꽤나 시끌벅적해지는 단점이 있다. 옆 단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엄마들의 모임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우리 단지 카페보다 넓어서 좋은데 커피맛이 살짝 아쉽다. 보통 라테를 마시는데 바닐라 라테는 너무 달고 그냥 라테는 커피의 그 쌉싸름하고 진한맛이 안 느껴져서 그냥 자리값이라고 생각하며 가고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 6교시 오후 2시 반 하교.
거의 옆단지 카페에 가거나 아이들 책 반납과 대출을 하러 국립도서관에 간다. 최근에 또 정착하게 된 도서관 4층에 있는 일마지오 카페에 가는 게 새로운 루틴에 포함되었다. 바로 앞에 세종 호수공원이 있어서 창가뷰가 아주 환상적이고 햇볕도 아주 쨍하게 잘 들어와(겨울에도 더울 정도로) 각 잡고 뭘 하기에 아주 좋다. 도서관 카페이다 보니 모두들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분위기라서 자주 이용할 것 같다.
수요일. 4시 반까지 방과 후 수업. 아주 쏠쏠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요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뚜레쥬르 2층에 있는 카페에 간다. 1층은 빵을 판매하고 2층은 단독 카페로 되어 있어서 사장님 눈치 없이 오래오래 한 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2층 한쪽 구석 코너가 혼자 앉아있을 자리로 딱이라 나만의 지정석으로 지정. 여기에만 앉는다. 뚜레쥬르는 LG텔레콤 할인이 되서 커피와 빵도 할인받을 수 있어 커피값 부담도 덜어줘서 좋다. 집에서 부랴부랴 나오느라 아침을 거를 때면 맛있는 빵과 커피를 계산하고 2층에 올라간다. 쟁반을 들고 올라가는 이 순간 가장 행복하다. 내 자리에 아무도 없겠지..?!!
항상 구석자리에 앉아 있으면 바로 앞에 단체석에서는 여러 모임들이 이루어진다. 교회 모임, 영어 스터디 모임, 글쓰기 모임, 새로운 가게 오픈을 위한 직원분 면접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들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이렇게 대화를 듣다 보면 참 세상 사는 게 별거 없구나, 다 같은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를 느끼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마치 현장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며 도청하는 형사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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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아지트라 할 만큼 좋아하던 할리스, 이젠 그쪽으로의 발걸음이 예전 같지가 않다. 물론 자리 때문이다. 조금 서두르면 항상 구석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항상 실패한다.
여기는 그 자리가 아니면 집중이 잘 안 되는 신기한 곳이라서, 아예 늦어지면 그냥 다른 곳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올해 들어서면서 멤버십 혜택에 사이즈 UP도 없어지고 아주 가끔 배고플 때 먹었던 스파이시 리소토도 메뉴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차곡차곡 모아 둔 쿠폰 알뜰히 쓸 날을 위해 기회를 계속 노려봐야겠다.
금요일. 4:30까지 둘째의 요리방과 후가 있는 날
금요일이기도 하고 늦게까지 여유로워서 이 날은 조금 멀리 떨어진 투썸 플레이스에 간다. 집에서 차 타고 10여분 정도 거리이다.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 단독주택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이쁜 주택건물들 보는 재미도 있고 개인 차고와 2층 건물, 작게나마 잔디마당이 있는 집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도 이런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되는 것 같다. 예쁜 동네라 카페 2층에 올라가서 널따란 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마치 별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산과 예쁘게 솟아있는 나무들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뭘 해도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자연은 항상 어디에서든 선물이다.
이렇게 일주일 내내 꽉꽉 채워서 가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이렇게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놓으면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생산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게 되는 것 같다.
가능한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만의 카페를 가지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을 것 같다.
왜 벌써 설레이는 거지.
이제 아이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나의 루틴을 발동할 때이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