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삶… 내겐 낯선 행동이였 었다.
그 말이 그 말이고 내용이 뭐 다 비슷한 거겠지… 라며 어리석게도 흘겨봤던 지난 날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언어에 관련된 책을 두 권 읽었다. 바로 ‘언어의 위로’와 ‘언어의 온도’.
‘언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누가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는가에 따라 느껴지는 모양새들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언어의 위로 (곽미성 작가님)
영화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가서 몸으로 부딪치며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자괴감과 또한 프랑스어는 모국어가 아님을 인정하고 당당히 해방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 외국어라는 작가님의 말.
.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님)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적당한 온기 등 나름의 온도가 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으로 위안을 얻는다. 이렇듯 "언어"는 한순간 나의 마음을 꽁꽁 얼리기도, 그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 주기도 한다. -출판사 서평
음악과 책. 장르는 다르지만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먼저 표현했을 법 하지만 그걸 누가 말하고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은 노래라도 소울 풀한 흑인 가수가 부르는 노래와 팝 장르의 세련된 미디음악으로 부르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듯이 말이다. 글에서도 느껴진다. 같은 소재이지만 각각의 글에서 어떤 flow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를...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활자들이 따뜻한 위로의 망토가 되어 나를 감싸 안아주는 기분이다. 그 따스함의 파도에 이리저리 넘실대는 느낌이 꽤 새롭기도 편안하기도 하다.
요즘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할 때 항상 음악을 곁에 두고 언제든지 재생목록에 있는 노래들을 꺼내어 하루종일 듣곤 했는데 요즘은 글과 말에 위로를 받는다. 다른 브런치 작가분들의 글도 많이 읽게 되고 또 그 글에서 내뿜어지는 포근함이 나도 모르게 위안이 되어 쓱 스며드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의 글은 ‘글쟁이’식 글... 멋들어지게 쓰기 위해 쓰인 글이란 생각도 들지만 나와 맞는 사람들의 글에선 사람냄새와 선함 그리고 진심이 느껴진다.
난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읽지 않는다.
그래도 책이니 정 붙여보려고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의 말씀처럼 내가 현실에선 직접 겪어볼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영화 같은 극적인 일이 나에게 얼마나, 몇 번이나 생길 수 있을까…?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읽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에세이는 너무 좋다. 실제 몸소 체험한 이야기이고 직접 경험한 일들이니 이것만큼 현실적이고 공감되는 일이 없지 않은가.
작가님들의 짧지 않은 인생에서 얻은 아주 귀중한 경험담을 책 한 권에 다 쏟아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하기도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이야기들도 너무나 재미있고 따뜻하고 인간적이어서 벌써 이 울타리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지나가시는 발걸음이 잠시 저에게 머무르셔서 ‘라이크잇'과 '댓글'로 관심 가져주심에 이제 조그만 씨앗이 뿌려진 작은 화분을 촉촉이 적셔주시는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
글을 잘 읽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는 건 모두가 부정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2024년 작년 한 해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 한 책이 딱 2권이다… 세상에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다.
1월, 그것도 도서관에서 영어공부 좀 하겠다고 장동완 님의 [9등급 꼴찌, 1년 만에 통역사 된 비법]과
3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렇게 두 권이다. (이 글을 쓰면서는
슬픈 Bgm을 들어야겠다 )
영어 귀도 좀 트이고 아이들에게 책도 좀 들려줘야겠다 싶어서 스토리텔도 1년 구독했지만 역시나
몇 권 듣지 못하고 구독권이 안개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끊어지겠지.
이러한 이유로? 나는 표현에 많이 서툴고 머릿속 생각들이 잘 정리가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내 의사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잘 흥분하는 편이기도 하다. 소위 말로써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한 중학교에서 잠시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행정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여자 직원분이 말씀을 너무 예쁘게 하셨다. 목소리도 낭랑하며 차분하셨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하시는 말투가 너무나 매력적이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말을 이리도 예쁘게 하고 듣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있구나,라는 걸 이때 처음 느꼈다. 최근에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알게 된 서울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주시는 나민애 교수님 영상을 보고 있으니 앞서 얘기한 중학교 직원분이 오버랩되면서 뭔가 비슷한 결이 느껴졌다. 말씀을 조리 있게 나긋하게 또 친근하게 하셔서 이 영상을 빠져들어 보다가 나태주 시인님의 따님이라는 사실에 순간 동공이 커졌다.
역시 이유 있는 말솜씨에 여유 있는 자신감이 괜한 생각이 아닌 거였다. 참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올해 내게도 이런 아우라가 피어오르길
글도 꾸준히 쓰는 내가 되길
AI시대에 구수한 사람냄새 폴폴 나는 내가 되길
2025년 12월엔 더 많은 작가님들을 만나길
오늘도 좋은 글귀들을 놓치지 않으려 독서노트에 그들만의 언어를 꾹꾹 눌러 잘 담아두려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라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