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고는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예쁜 식사밖에 몰랐던 나. 여러 에세이에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는데 됐다.’, 혹은 ‘브런치 공모전에 뽑혔다.’라는 글이 심심찮게 보였는데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쁜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아침이었다.
불현듯
‘글 한 편 써볼까.’,
‘이왕 쓰는 거 브런치에 보내볼까.’ 하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났다.
신기한 것은, 두 달 전부터 내가 글감을 모아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카톡 나에게 보내기로 몇십 개의 글감이 모아져 있었고, 그중에 쓸만한 것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일련의 글 쓰는 과정이 마치 다 계획하고 하는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홀리듯 끌리듯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작가... 작가라니... 훗.
내가 쓴 글을 보고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하면 어쩌지, 걱정도 했다.
이틀 후,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정말? 내가?
손이 떨렸다. 내가 쓴 첫 에세이를 읽고
브런치 작가 발굴팀이(글 볼 줄 아시는 훌륭한 분들이) 이 세계에 나를 끼워 넣어주다니, 너무 기뻤다. 다시 카톡 나에게 보내기를 봤다. 쓸 이야기들이 더 있었다. 좋았어!
글을 쓸 때는 기쁨 반, 고통 반이기는 했지만, 구독자도 없는 이 생 신입이 쓴 글을 읽고 라이킷과 구독을 눌러주셔서 나는 매우 신이 나버리고 말았다.
글을 읽고 소비하는 데 그치던 내가 생산자가 되고,내 글을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시니...
성은이 막 망극하고 감개가 참 무량하고... 아주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그날은 오전부터 일이 있어서 좀처럼 앉아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집에서 왔다 갔다 하자 나는 더욱 마음이 산란해져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 그래도 오늘 안에 다 쓰고 싶은데...’
책상 앞과 거실과 아이들 방을 들락거리면서도 노트북을 끄지 못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딸아이가 학원에 가야 하는 시간을 30분 남겨 두고 글을 다 썼다.
저녁을 먹여서 학원에 가야 해서 부리나케 밥통으로 달려갔는데, 아뿔싸. 밥통에 밥이 없다.
배민 시킬까, 아냐 늦어, 늦어.
라면 끓일까? 아, 하필 애들이 안 먹는 @@라면 밖에 없네. 어떻게 할까.
그러다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 400미터에 위치한 분식집이 떠올랐다. 아주머니의 손이 빨랐던 것도 기억이 났다.
“얘들아 엄마가 얼른 떡볶이랑 어묵 사 올게!”
점퍼 입고 지갑 챙겨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서 분식집을 향해서 가는데 저 멀리 내가 건너야 하는 신호등이 곧 초록 불로 바뀔 기미가 보였다. 건너야 했다. X자 횡단보도라 지금 건너지 못하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왕년에 계주 선수 실력 어디 안 갔어! 열심히 달렸다.
초록불이 깜박거리고 횡단보도를 이제 거의 다 건넜던 그때, 코너에서 우회전해 들어오던 택시가 나를 보지 못하고 직진했다. 끼이익! 코앞에서 멈췄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나도, 택시기사 아저씨도 많이 놀랐다. 잘못은 둘에게 모두 있었다. 아저씨는 신호를 어겼고, 나는 횡단보도를 위험하게 건넜다.
분식집으로 가서 떡볶이와 어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앞에 상을 차려주며 내가 왜 마음이 들떠서는 안 하던 짓을 했을까 생각했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것은 재미, 재미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흠뻑 빠지는 경험을 한 지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너무 오래됐었다. 매일 비슷한 일을 하는 나의 일상에 브런치는 단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