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이 되었다. 가지고 있던 돈은 이제 거의 다 쓰고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나면 거의 한 푼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재우를 더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재우 없이 혼자 한국으로 돌아갈지.
내가 마약을 발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재우가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재우가 없었다. 설마 하며 옷걸이에 걸린 패딩을 뒤져봤지만 역시나 모두 없어진 뒤였다. 재우는 쪽지 한 장 남겨놓지 않고 가버렸다. 재우를 그대로 놓쳐버릴 것만 같아 불안했다. 재우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 봤지만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호텔 방에 앉아 멍하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속이 아리고 머리가 아팠다.
답답한 마음에 호텔 밖을 나섰다. 비가 오고 있었다. 매일 새파란 하늘만 보여주던 호주였는데 비가 오니, 전혀 다른 풍경이 되었다. 햇빛 한 조각 보이지 않았다. 우중충하고 축축했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비를 좀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를 맞아서, 내 몸에 비가 흘러내려서 힘들고 복잡한 내 마음들이 조금이라도 씻겨지기를 바랐다.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후드득 떨어지던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길을 따라 걸어서 하이드 파크에 도착했다. 재우 앞에서 약을 태워버릴 생각을 하다니... 멍청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 재우와 함께 있었던 벤치에 앉았다. 비는 어느새 세찬 소리를 내며 쏴아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드문드문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눈 속으로 자꾸 들어오는 빗방울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니 턱에서 빗줄기가 주르륵 떨어졌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재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사진 폴더를 열었다. 호주에 와서 찍은 사진이 몇 없었다. 그러다 유리의 이모가 하는 베이커리 주소를 봤다. 한참이나 바라보다 일어섰다. 한국으로 돌아갈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유리를 만나야 했다.
유리의 이모는 저번에 봤던 복장 그대로 서 있었다. 한 번씩 콧등에 걸려 있는 안경을 올려 쓰며 작은 테이블 앞에 빵 포장지와 포장끈 등을 놓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가게의 건너편에서 서서 삼사십 분 동안 지켜봤다. 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저번에 이상한 모습으로 멀뚱히 서 있던 나를 이모가 기억할 것 같아서 소득도 없이 가게에 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 가게에 분명 유리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는데, 이제 그것도 잘 모르겠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비를 맞으며 걸은 지 서너 시간이 지났다. 유리를 만나기 전 긴장되던 마음은 이제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밀려나 있었다. 여기서 더 버틸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어떤 여자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그녀는 비를 다 맞으며 달려왔다. 그녀가 누구인지 나는 바로 알아봤다. 비와 어둠 속에서 그녀가 오롯이 분리되었다. 유리였다.
이모가 말해줬어. 저번에도 왔었다며.
그래? 나인 줄 어떻게 아셨지?
우리 이모가 원래 눈치가 엄청 빨라. 내가 호주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네가 생각날 때마다 울었어. 내 얘기를 워낙 잘 들어주는 이모니까... 나도 이모랑 같이 일하면서 그냥 한 번씩 네 얘기하고 그랬거든. 그때마다 한국에 두고 온 그 녀석 우리 조카 울리다니 만나면 혼내주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그날 너를 보고는 왠지 느낌이 왔나 봐. 확실하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하지 못했다고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아까 전에 이모가 부재중 전화를 5번이나 한 거야. 수업 듣고 있어서 받지 못했는데 이모가 급하게 전화할 일은 너밖에 없어서...
유리의 모습은 고등학생 때와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화장을 하지 않아 맨 얼굴이었고 긴 생머리는 뒤로 질끈 묶여 있었다. 편해 보이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만 귀에서 달랑거리는 귀걸이가 그녀를 고등학생 때의 유리로 보는 것을 막았다. 나는 유리의 아주 작은 변화를 감지했다.
유리를 만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모두 젖어버린 몰골과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 떨리는 몸이 신경 쓰였다. 이대로는 유리와 계속 대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기다렸는데 금방 헤어지기도 싫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유리는 나에게 이모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모네 집?
응 가게 바로 위층이 이모네 집이야. 이모가 예전에 쓰던 공간인데 지금은 거의 나랑 지내느라 방치 중이야. 그래도 너 씻을 거랑 갈아입을 옷 정도는 있을걸.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몇 년 만에 만난 건데. 어떻게 유리의 이모네로 가서 내가 씻을 수가 있을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민준아. 네가 지금 거울을 못 봐서 그래.
유리의 눈이 웃고 있었다. 유리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가 보고 싶어 잠을 이루지 못할 때마다 나는 이 눈을 그리워했다. 구슬처럼 까맣고 동그란 유리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 비치는 것들은 실제보다 더 깨끗해 보이겠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못 이기는 척 유리의 손에 이끌려 가게의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사이 유리는 이모에게서 열쇠를 받아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향긋한 빵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유리는 거실 불을 켜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슬리퍼와 옷가지 등을 주워 자리에 두었다.
민준아, 얼른 들어가서 씻어. 수건은 선반 안에 있을 거야. 나는 옷 좀 찾아볼게.
나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담한 크기의 화장실이었다. 샴푸와 비누 등이 단출하게 놓여 있었다. 문을 닫고 젖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척척하게 들러붙은 옷을 떼어내며 이 옷을 언제부터 입고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몸을 씻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속옷까지 모두 벗고 거울을 봤다. 초췌한 얼굴에 지저분한 몸뚱이. 씻지 않고 비를 맞은 나에게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유리가 이 냄새를 알아챘을까?
화장실 문을 조금 열어 앞에 유리가 가져다 놓은 옷을 집었다. 그런 나에게 유리가 팬티 같은 건 없으니, 미안하지만 바지만 입어야겠다고 했다. 유리가 웃음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바지만 입어야겠다고 말하며 웃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유리는 식탁 의자에 앉아있었다. 조용한 곳에서 유리와 단둘이 있으니 나는 이제야 그녀를 만난 것처럼 갑자기 긴장되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를 한 번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호주까지 와서?
유리는 의아해했다.
유리가 한국을 떠난 지 벌써 햇수로 4년이었다. 서로가 생각나고 못 견디게 보고 싶었던 시간도 분명 있었다. 비슷한 사람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혹시나 나를 찾아왔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지나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진부한 말이 싫었지만 그건 한편으로는 옳은 말이기도 했다. 유리는, 그리고 나는 우리 상황에 조금씩 순응했다.
언제 왔어? 친구들이랑 온 거야?
어. 온 지 한두 달 됐어. 대학 친구랑 왔고.
그렇구나. 두 달이면 꽤 오래 있었네. 근데 이제야 날 만나러 온 거야?
유리가 분위기를 바꿔보려 눈을 찡긋하고 웃었다. 나는 유리의 예전 모습이 생각나서 긴장이 조금 풀렸다.
친구랑 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늦어졌어. 미안.
유리가 내 얼굴을 가만히 봤다. 나도 유리의 눈을 바라봤다. 새까만 유리의 눈 속에 내가 보였다. 네 눈은 정말 네 이름 같아. 나는 부모님이 이름을 정말 잘 지으셨다고, 만약에 유리가 아니라 금이나 은 혹은 보석의 이름이 들어갔으면 정말 더 대박이었겠어 하며 내가 농담했던 기억이 났다. 유리는 그런 유리 아니라고, 권할 유에 이로울 리. 이로운 것을 권한다는 고매한 이름인데 무슨 소리냐고 받아쳤다. 지나간 추억을 생각하는 나와 달리 유리는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유리라서 나는 오히려 유리가 나를 더 살펴봐 주기를 원했다. 혼란스러운 내 상황을 돌파해 나갈 방법을 유리라면 알지 않을까 기대했다.
저녁은 먹었어? 유리가 물었다.
아니, 아직.
내가 뭐라도 해 줄게. 가게 내려가면 재료 있으니까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유리는 한사코 기다리라고 했다.
유리가 나가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나는 유리와 만나서 무얼 하려고 했던 걸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재우를 찾지 못해 괴로웠던 심정을 여기 와서 위로받고 싶었던 걸까. 유리를 만나서 기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유리를 꼭 만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이제 기억나지 않았다. 유리의 얼굴에 잠깐 비쳤던 표정. 나만 알 수 있었던 미세한 불안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유리는 나를 보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유리를 생각하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재우의 갑작스러운 실종은 버거운 일이었다. 준비 없이 유리를 만난 일도 이제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어 다가왔다. 비를 맞고 쏘다니다 씻고 나니 나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는 물론 눈과 뇌와 가슴에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나는 귀를 기울였다.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예전에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소리는.
가짜 가짜 가짜.
아주 작게 들리던 그 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가짜 가짜 가짜 가짜.
뭐야?
처음 LSD를 먹고 환각 중에 들었던 그 소리였다.
뭐지?
약을 먹지 않은 지 이미 여러 달이 지났다. 재우가 코카인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왠지 더 이상 약을 즐길 수가 없었다. 새로운 약을 하기도, 하던 약을 계속하기도 싫었다. 재우를 도와서 약을 팔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환각 증세가 나타나다니,
식은땀이 났다. 등과 겨드랑이가 금세 축축해졌다. 앉아 있기 불안해서 벌떡 일어나 거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가짜 가짜 가짜.
뭐가 가짜라는 거야? 허공에다 소리를 질렀다.
가짜 가짜 가짜.
쉴 새 없이 들리는 소리 때문에 어지러웠다.
악! 그만해!
머리를 쥐고 주저앉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사람을 쳐다봤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현관을 지나쳐 내가 있는 거실로 걸어왔다. 그는 손에 번쩍거리는 것을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칼이었다.
뭐야? 당신 누구야?
내가 겨우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 사람은 말도 없이 내 가까이 걸어왔다. 칼을 들고 가까이 오는 그 사람은 유리를 닮은 것 같았지만 유리가 아니었다. 가짜였다.
유리 어디 있어! 당신 누구냐고!
그 사람이 더 가까이 왔다. 나는 다가오는 그의 어깨를 할 수 있는 대로 힘껏 밀었다. 그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 사람의 손에 들고 있던 것이 현관 쪽으로 날아갔다.
쨍그랑!
큰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깨지고 정체 모를 것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민준아! 민준아, 왜 이래!
유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가까이 다가갔다. 다시 보니 유리의 얼굴이 맞는 것 같았다.
유... 유리야.
유리는 바닥에 넘어진 채 떨고 있었다.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현관문과 바닥에 마구 뿌려진 것은 치킨 수프였다. 나에게 주려고 유리가 가게에서 만들어 온 치킨 수프에서 아직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너 괜찮아?
유리를 일으켜주려고 손을 뻗자, 유리가 어깨를 움츠렸다.
어어... 괜찮아.
유리는 내 손을 피해 일어섰다.
현관문이 다시 한번 열리고 유리의 이모가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유리의 이모는 여기저기 뿌려진 치킨 수프와 깨진 그릇의 파편, 그리고 나를 번갈아서 쳐다봤다.
유리 괜찮은 거야?
이모가 물었다.
응, 이모.
이모는 유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미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후였다. 유리가 보고 싶어 하던 저 남자는 유리에게 해를 가하려고 했다. 이 집에서 최대한 빨리 내보내야 했다. 그것이 이모가 할 일이었다.
유리 잠깐 가게에 내려가 있어.
이모가 말했다.
이모.
유리가 이모의 팔을 살짝 잡았다.
유리야, 이모 말 들어. 내려가.
이모는 단호하게 말했다.
유리가 나가고 유리의 이모와 나 둘만 남자, 이모가 말했다.
유리가 여기 와서도 학생 얘기를 종종 했어요. 둘이 한국에서 잘 지내다가 헤어지게 돼서 나도 마음이 좀 쓰이더라고. 학생이 우리 가게에 처음 왔던 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하게 나는 바로 알아보겠더라고. 유리가 말한 그 남학생이구나. 속으로 인연인가? 하며 재밌겠다고도 생각했지. 학생이 오늘 비 맞으면서 밖에 서 있는 모습이 나는 왠지 아슬아슬해 보이기는 했어요... 그래도 유리가 보고 싶어 했으니까. 만나게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연락한 거예요.
유리의 이모는 유리를 보호하고 싶어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환각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손으로 유리를 밀친 감각은 생생했다. 작은 유리의 몸을 내가 가차 없이 밀었다는 사실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내가, 그것도 유리에게 그런 짓을... 참담했다. 유리의 이모에게, 그리고 유리에게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유리의 이모는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모르니 더 얘기하기는 힘들겠어요. 근데... 여기를 보니까...
이모는 현관과 바닥을 보며 말을 이었다.
큰일이 있었던 거고, 그게 유리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는 확신이 드네요. 맞아요?
유리 이모의 꿰뚫는 듯한 눈빛을 받아내기가 힘들었다.
나가줘야겠어요.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여기 찾아오지 말아요.
유리 이모의 경계 어린 눈빛을 받으며 나는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화에도 치킨 수프가 쏟아졌는지 뿌연 액체가 운동화 안에 찰랑거렸다. 비와 치킨 수프로 흠뻑 젖은 운동화를 신고 나는 절벅절벅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서 가게 안을 봤다. 유리가 안에서 가게 밖을 보며 기다리다가 내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뛰어나왔다.
민준아...
유리는 안쓰러워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했다. 내 얼굴을 살피며 유리는
전화번호 알려줘. 지금은 일단 가고.
미안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미안해 유리야.
응.
그때 유리의 이모가 2층에서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번호를 듣지 못한 유리는
맥쿼리 대학교. 내가 다니는 학교야 내일 2시.
짧게 말하고 들고 있던 우산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어서 가.
유리는 내 등을 살짝 밀었다.
나는 유리 이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가게 앞에서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고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유리가 준 우산을 뒤늦게 폈지만 보송했던 옷은 이미 젖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