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 봉투
려는 하품을 했다.
"지루하네."
"...미친놈."
강은 그런 려를 보고 불쾌한 듯 욕을 읊조린다. 려는 검지손가락으로 강의 턱을 들어 올린다. 그리곤 싱긋 웃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거 알아? 강의 그런 표정은 좀 흥미로워. 어떻게 해야 더 괴로운 표정을 지을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눈앞의 쓰러져있는 또 다른 남자를 툭 찬다.
"소중한 사람이야?"
"대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날 괴롭히고 싶으면 다 나한테 해. 왜 상관없는 사람을 끌어들여, 왜!"
분노에 젖어든 목소리가 공허한 공간에 가득 찬다. 그 목소리를 향한 경쾌한 구두소리가 대조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려의 높아진 손길에 따라 거친 파열음이 이어 들려온다.
"강. 사람이 질문을 했으면 그에 마땅한 대답을 해야지. 왜 딴 소리야."
"너 사람 아니잖아. 어디 사람취급을 받으려 해, 살인자 새끼가."
이를 으득 갈며 강은 려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살인자? 살인자라."
생각에 잠긴 듯 려는 중얼거린다. 이내 다시 발길을 돌려 강을 등 진다.
"그래. 그거 좋네. 그 타이틀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재밌잖아. 날 보면 덜덜 떠는 모습이. 근데 왜 강은 날 무서워하지 않지?"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다. 물론 강은 그에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지만.
"내가 이 손가락을 좀 잘라서 얘 가족들한테 선물로 보내주는 건 어때?"
려는 쪼그려 앉아 쓰러진 남성의 손가락이 더럽다는 듯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올리고는 흔들어 보인다.
"대신 예쁘게 포장도 해줄게. 나는 예쁜 게 좋거든. 봉투에 넣어서 리본도 붙이고 러브레터처럼."
잔인한 말을 내뱉으면서 깔깔 웃고 박수까지 치는 모습이 기괴해 보였다. 어느 부분이 대체 웃긴 건지 려 외에는 이해할 수 없는 웃음코드다.
"제발... 제발 걔는 살려줘.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아 줘."
"부탁하는 거 치고는 심심하다, 강아."
"...부탁할게. 걜 놓아주고 차라리 날 죽여. 어떻게 죽이든 감내할게."
그 대신 자신을 죽이라는 강의 말에 웃음기가 서려있던 려의 얼굴은 금세 굳은 얼굴로 눈썹이 찡그린다.
"아냐, 아냐.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영원히 네 옆에 있을게. 도망가지 않을게. 네가 하라는 대로 모든 할게."
그제야 려는 활짝 웃어 보이며 강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응.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