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 비
모두가 나를 특이하게 생각했다.
“쟤 또 저런다.”
“저거 다 관심받고 싶어서 그래.”
사실 나에게 누군가의 관심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귀찮을 뿐이다. 어쩐지 이상하다는 나를 바라보면서 은근슬쩍 자신을 투영하는 건 아닌가 싶다. 제 마음대로 해석하는 거 보면 꽤 신빙성 있는 말 아닌가? 만약 자신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는 뜻이니까. 여전히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이제 퍽 따스해진 봄날의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저번 비는 조금 쌀쌀한 날에 와서 그랬는지 다음날 독한 감기에 걸려 한참을 고생했다. 하지만 오늘 감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눈을 감고 하늘로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오롯이 빗방울의 감각을 느낀다. 비를 맞고 있으면 주변에 있는 것들이 어느새 하나둘씩 사라지고 오직 이 세상에 온전히 나 혼자인 기분이다. 자유로우면서도 아득하고 두둥실 한 이 기분이 좋아서 언제라도 비가 오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우산도 없이 냅다 바깥으로 뛰어나간다. 다들 이 좋을 걸 모르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누군가라도 이 기분을 함께 느끼면 더 좋을 텐데 내 마음을 이해하는 이가 언젠가는 나타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내리고 눈을 슬며시 떴다. 한참을 감고 있었던 터라 물체들이 또렷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눈에 상이 제대로 맺히지 못하는 건 끊임없이 얼굴에 내리치는 빗줄기도 한몫했다. 시야가 적응될 때쯤 멀지 않은 곳에 노란 우산을 쓴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노란 우산뿐만 아니라 노란 우비, 노란 장화까지 무슨 한 떨기의 개나리 같은 모습이었다. 어지간히 비를 맞기 싫었는지 꽁꽁 싸맨 모습이 내 모습과 대조되어 웃음이 나왔다. 나를 바라보고 있다 들켰다는 걸 눈치챘는지 티 나게 허둥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향해 인사했다. 평소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안녕.”
아이도 내가 인사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우두커니 서서 그저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얘, 이리 와 봐.”
손짓까지 하며 한 번 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다. 가까이서 보니 더 개나리 같은 아이였다. 비를 맞지 않겠다며 온통 무장하고 나왔어도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는 자그마한 물방울들이 한두 방울 떨어져 있었다. 너는 여전히 노란 우산을 꼬옥 쥔 채 먼저 입을 뗐다.
“미안. 이렇게 쳐다보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럼?”
“네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서 그랬어.”
행복해 보였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 우물쭈물하면서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눈앞의 이 아이가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그럼, 너도 같이할래?”
“나도?”
“그래. 재밌을 거야.”
“그렇지만 옷을 다 망치고 말 거야.”
“그럼 빨면 되지.”
“온몸이 젖을 텐데.”
“그럼 씻으면 되지.”
내 대답에 너는 곰곰이 생각하다 뭔가를 깨달은 듯이 말했다.
“그러네. 사실 문제 될 건 없었어. 그냥 두려웠던 거야.”
이내 우산을 내려놓고 장화를 벗더니 마지막으로 우비까지 벗어냈다. 노란색으로 가득 찼던 너는 금세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나와 똑같이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그러고는 내 눈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순간 너는 마치 흐린 날에 저 멀리 보이는 유일한 맑은 하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