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그날은 참 이상했다. 갑자기 혼자 산에 가겠다 생각한 일도 그렇게나 밝았던 날씨가 순식간에 흐려진 일도 말이다. 내가 무사히 집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산신님이 너를 예뻐해서 이번에도 살려주셨구나 하며 어딘가로 향해 자꾸만 감사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를 데려간 건 할머니가 그렇게나 고마워하는 그 산신이라는 작자라는 걸. 할머니가 말한 대로 이런 일이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제 스스로는 그다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어렸을 때 일이다. 그때부터 부모님과 사는 집보다는 조부모님과 사는 집이 더 익숙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바람 솔솔 부는 그늘 진 마루에 엎드려 온갖 것들을 펼쳐놓고 그림이라고 부르기에도 엉망인 선긋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에, 할아버지는 밭에 있었기에 어린 나를 지켜보는 존재는 마당의 누렁이뿐이었다. 그마저도 낮잠에 취해 기분 좋은 듯이 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일상이었던 터라 그 누구도 이 상황의 위험성을 전혀 느끼고 있지 않았다. 노인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의 유일한 아이인 나를 해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게 문제였다. 세상엔 인간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엔 내가 너무 어렸던 탓이다.
따뜻한 햇살 아래 편안하게 누워있던 누렁이의 귀가 갑자기 들썩거렸다. 이내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나더니 어딘가를 향해 매몰차게 짖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순한 누렁이가 저렇게 짖을 정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일 만한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뭘 몰라서 겁이 없었던 걸까 끙차 하며 작은 몸을 일으키고 누렁이를 향해 다가갔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조용히 해, 조용.”
아직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누렁이에게 타일렀지만 소용없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뭔가가 몸을 통과하는 듯한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는 가끔 영을 본다고 하는 게 사실인지 뒤를 돌아보니 보이지 않던 게 그제야 보였다. 이걸 보고 누렁이가 그랬구나. 너는 이 모습이 두려웠구나. 압박감이 느껴지는 거대한 몸짓에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서 할머니에게 달려가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어서 할아버지를 불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떨리는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누렁이의 털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그 존재는 소름 돋는 미소를 짓더니 뒤를 돌아 산 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가는 건가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 그렇게 움직이고 싶었던 발이 이제는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 짖던 누렁이는 이제 낑낑거리며 나의 옷가지를 이빨로 물고는 끌어당겼지만 그 힘을 이기기엔 너무 약했다. 그리고 한참 뒤 할머니가 나를 보러 나왔을 때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고 했다.
한참 지나 쓰러져 있던 나를 발견한 건 다른 지역에서 온 심마니였다. 그것도 며칠이 지난 뒤 모두가 희망을 잃고 절망스러워하고 있을 쯤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꼼꼼하게 모든 곳을 찾았을 때는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은 어이없을 정도로 산 입구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구라도 보라는 듯이 있었다고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체온증으로 명을 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눈을 떴을 때 산속에서의 기억은 모두 잃은 뒤였다. 어른들이 정신이 든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어느 것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그 못된 것이 내 목소리를 가져갔다고. 어른들은 내가 충격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전혀 그게 아닌데. 그것도 모르고 그들은 산신을 위한 제사를 정성스럽게도 지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겨우 그에게서 살아 나왔는데 심지어 소중한 목소리까지 잃었는데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듣는다니 속이 뒤틀렸다. 시끄러운 사물악기 소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내 세상만 그렇게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아, 다행히 누렁이는 무사하다.
한번 빼앗긴 목소리는 역시 그렇듯 쉽게 돌려주는 일이 없었다. 그때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렸을 때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저 어린아이의 섬뜩한 상상력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에 수많은 언어치료, 심리치료를 받아봐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주변 어른들 모두 애가 탔다. 정작 나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덤덤했다. 그런 점이 어쩌면 어른들을 더 슬프게 만들었나 보다. 애가 애답지 못하다는 말들을 하는 거 보면. 그림으로는 안되나 싶어 글로도 심지어 몸짓으로도 그 거대한 산신이 내 목소리를 가져갔다 명확하게 이유를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이상한 아이가 되어갔다. 왜 다들 이렇게 또렷한 진실을 믿지 않는지 모르겠다. 혹시 모른 척하는 걸까.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여전히 목소리는 되찾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오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민 없이 산으로 올라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혼자 산을 오르다니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온 확신이었을까.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갑자기 흐려진 날씨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아 주위를 둘러보던 중 타이밍 좋게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수상한 모습의 동굴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단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둔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언젠가와 봤던 장소 같았다. 그래, 그때다. 내가 목소리와 함께 잃어버린 기억 속에 이 장소가 분명하게 있었다. 이곳은 그 산신이 머무르는 터였다. 이제야 생각났다. 그날의 일이.
정말 말 그대로 발이 이끄는 대로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만 했다. 소리도 질러보고 엉엉 울어도 봤지만 이 마을에 내 목소리를 들은 이가 하나도 없다는 듯이 고요했다. 평소 같았으면 누구라도 뛰쳐나와 우리 아가 무슨 일이니 하며 하나 둘 내 주변으로 모였을 텐데 오늘따라 저를 찾지 않아 더욱 서러워졌다. 조그만 것이 쉴 새 없이 한참을 그러니 거슬렸는지 앞만 보고 가던 산신이 잠시 멈춰 나를 향해 가벼운 손짓을 했다. 그 순간 나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손짓 하나로. 조용해진 내가 만족스러웠는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최소한의 발버둥조차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나를 데려가서 잡아먹으려나. 복잡해진 머릿속에 가족들이 생각났다. 다들 나를 빨리 찾아줘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가는 길은 그 산신이 원래 다니던 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내가 따라가기엔 큰 무리가 있었다. 거친 풀들에 그 여린 살갗이 쓸리고 긁혀도 산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일말의 측은지심조차 없는지 뒤조차 돌아보지 않았다. 체력이 다했는지 우는 것도 지쳐서 눈물자국만 가득한 얼굴로 그 뒷모습만 바라보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해는 곧 사라질 듯이 보이고 어둠이 서서히 몰려왔다. 그리고 동굴 하나가 나왔다. 뒷산에 이런 동굴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글에 잠시 내 상황을 망각한 채 신기한 듯 주위를 살펴보았다. 항상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 속에 동굴에는 토끼도 살고 여우도 살고 호랑이도 산다고 했다. 호랑이? 문득 호랑이가 나오면 어쩌지 무서워하다 제 앞에는 그것보다 위협적인 귀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 한가롭게도 호랑이나 생각했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금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내가 유달리 낙천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산신이 처음 봤을 때만큼은 무섭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으니 그저 또렷이 쳐다보고 대체 날 왜 데리고 왔냐는 식으로 팔을 흔들어 보였다.
"참으로 명랑한 아이구나."
여전히 저 미소는 소름 돋지만. 의외로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생긴 것만 보면 끔찍한 목소리일 줄 알았는데 역시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
"궁금하느냐? 이렇게 널 데려온 이유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심심풀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나중에 데려다줄 테니."
선신인지 악신인지 혹시 잡귀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도 크게 해는 끼치지 않는 거 같았다.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목소리는 언제 다시 돌려줄 거냐는 뜻으로 목을 가리켰다.
"목소리? 아, 그렇지. 그냥 돌려주기는 재미없는데."
여기서 재미를 찾는 이 존재도 정상은 아닌 거 같았다. 웬 심술인지. 내 목소리를 내가 돌려받겠다는데.
"나와 내기를 하자꾸나. 네가 이기면 목소리를 돌려주겠다. 하지만 지면 영원히 돌려받지 못할 게야."
나는 내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몸짓으로 항의하듯 화를 냈다. 이 답답함을 계속 겪으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기였다. 나로서는 이득이 없지 않은가.
"그래. 네가 이기면 상도 주마."
상? 이건 조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그냥 주지 않을 거면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널 집으로 데려다주면 여기 있었던 기억은 다 사라질 게다. 그래도 네가 이 기억을 잊지 않고 이곳에 다시 온다면 목소리를 돌려주마. 쉽진 않을게다."
그렇게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얌전히 집에 데려다 주기보단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 던져놓듯 두고 간 걸 보니 역시나 친절한 편은 아니었나 보다.
"네가 이겼구나."
잠시 그때의 일을 되뇌는 틈에 산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기억 속 그 모습을 한 그가 있었다. 이제 목소리를 돌려받을 차례이다. 승자다운 당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한숨을 작게 쉬고는 목소리를 가져갔을 때처럼 가볍게 손짓을 했다.
"소리내보거라."
"아아-."
드디어, 드디어 답답함을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진짜 이러기예요? 정말 답답해 죽을 뻔했다고요. 왜 대체 이런 내기를 한 거예요. 나는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뺏긴 것도 돌려받는 것도 이렇게 맘대로 못하고 원래 내건데! 내가 진짜 기억 못 했으면 나만 억울한 거잖아요. 너무 못됐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이 와르르 터져 나왔다.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목소리의 느낌이 낯설었다. 진짜 나한테 나오는 소리가 맞나 하며 목을 어루만졌다.
"이래서 내가 뺏었던 것이다. 넌 너무 시끄러워."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산신은 귀를 막고 고개를 내저었다.
"참나, 그럼 납치당하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몇 년 사이에 더 명랑해졌구나. 지겹구나. 얼른 가거라. 목소리도 돌려주었으니."
산신을 손을 휘휘 저으며 벌레 쫓듯이 날 쫓았다. 하지만 아직 받지 못한 게 있었다.
"상을 주셔야죠, 상."
"아. 그래. 그런 약조를 했었지. 손을 내밀어보거라."
산신은 무언가를 손에 떨어뜨렸다.
"경단?"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다.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니 잘 간직하거라."
"이게 뭔...!"
이게 뭐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사라지고 나는 어느새 집 앞에 와있었다. 순간 꿈을 꾼 건가 손을 펴보니 여전히 경단이 쥐어져 있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어디 있었어. 어여 들어가자."
멀뚱하니 손 안을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의 목소리에 얼른 다시 손을 감췄다. 할머니는 들어가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할아버지와 함께 엄마와 아빠도 왔다. 한참 나를 찾으러 다녔는지 어딘가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그저 내가 어디 다친 곳을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뿐이었다.
"나 괜찮아. 이제 산에 갈 일 없어."
그 순간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 뭐라고?"
"나 괜찮다고."
별 말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엄마와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아빠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할아버지도 기쁜 듯이 크게 박수를 쳤다. 대체 왜 다들 그러지. 나는 그저 어른들의 손길을 받으며 어린아이답게 방글방글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