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념하다

동그라미의 꿈

제시어 : 모서리

by 유념

나는 모든지 무딘 것을 좋아했다. 직선보다는 곡선이 좋았고, 네모난 것보단 동그란 것을 좋아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에게 뭐가 될 거냐고 물어봤을 때 당연한 듯이 동그라미라고 했다. 모두가 그런 나를 특이하게 바라봤다. "왜, 이게 어때서?" 라며 당당하게 말하면 "동그라미로 산다는 건 매우 불편할 거야." 라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다. 안 그래도 힘든 오르막길을 오를 땐 자꾸 뒤로 돌아가 더 힘들 테고 내리막길을 갈 땐 분명 그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위협적일 테니.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내 결정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렇다 한들 저렇다 한들 나는 날카로운 것은 질색이다. 싫은 것과 불편한 게 있다면 차라리 불편한 걸 택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내 부모는 그런 나를 영영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다시 생각해 보라며 끊임없이 왜 동그라미가 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말들은 그저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한쪽으로 나갈 뿐이었다. 그래, 이쯤 하면 왜 모두가 말리는 동그라미가 되고자 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모난 게 싫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모서리. 나에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모서리가 있었다. 나의 슬픔이자 나의 아픔 그리고 나의 결점. 이 모서리를 영원히 숨기고 싶었다. 동그라미가 된다면 어떤 흔적 없이 이 모서리를 지울 수 있다. 그럼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저 나만 품고 있으면 된다. 근데, 정말 동그라미가 된다면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한순간에 그렇게 사라질 수 있을까? 문득문득 괜히 마음을 흔드는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무시했다. 이 모서리를 숨겨야만 해. 나는 결국 동그라미가 되는 길을 택한다. 동그라미가 되어 그 모서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나도 조금씩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고 믿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