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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념하다

자각몽

짧은 소설

by 유념

나는 가끔 자각몽을 꾼다. 꿈속에서는 달리 느껴지는 게 없지만 깨고 나면 몸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그 무게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진다. 왜일까?

자각몽은 대게 비슷한 흐름이다. 먼저 그곳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때 그 사실을 입으로 내뱉거나 티를 내면 안 된다. 그럼 곧장 꿈속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덮치며 그대로 무지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잠에서 깰 때까지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서 그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딱히 무섭거나 두려운 느낌은 아니지만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차라리 꿈속을 돌아다니는 것이 시간도 금방 가고 지루하지 않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평범하게 행동한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갑자기 일어난다. 어느 순간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친구가 있어도 원래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그것이 그 공간에서의 평범이자 룰이다.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처음에는 익숙해지는데 꽤 애를 먹었다. 익숙해지고 나니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몸은 잠들어 있지만 정신은 깨어있는 이때를 잘만 활용하면 하루, 24시간을 꽉꽉 채워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누군가가 자고 있을 때에도 난 여전히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돈이 되는 지금 이 시대에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선 뭔가를 배울 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나올 수 없지 때문이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 수도 없다. 현실과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아는 것을 복기하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들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나는 남들보다 적어도 몇 배는 더 공부할 수 있다. 틀린 것이나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있다면 깨고 나서 수정하거나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공부를 하기에 쓸 만한 공간을 찾아야 했다. 최소한 책생과 의자 그리고 종이와 볼펜 정도는 있는 곳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번 겉에서만 둘러봤던 각종 상가들 중에 학원 하나 없나 생각이 든 순간 어릴 적 잠시 다녔던 종합학원의 이름 보였다. 지체 없이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도 같이 놀 거지?"

갑자기 나타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당연하게 거절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 누군가와 놀 시간은 없다.

"치, 항상 같이 놀았잖아."

"오늘은 바빠. 앞으로도 이제 바쁠 거야."

"왜?"

"할 일이 있거든."

"네가? 여기서?"

이상한 질문이었다. 보통의 대화에서는 나올 수 없는 흐름이었다. 잠시 의아함을 느꼈지만 차분히 대답했다.

"응.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니까."

"흐음, 그렇구나. 알겠어."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고 있을 찰나 친구는 살짝 웃고는 내 곁을 떠났다. 도착한 건물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되어있었다. 덕분에 원하던 것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제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계획한 일을 하면 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있었구나?"

아까 떠난 줄 알았던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다른 몇몇 사람들도 함께였다.

"응. 공부 좀 하느라."

"너 이곳이 네가 살던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지?"

친구의 질문에 온몸을 감싸는 소름 돋는 감각이 느껴졌다. 머릿속에서는 시끄러운 위험 신호가 울렸다. 여길 당장 떠나야 한다. 깨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여러분, 오랜만에 싱싱한 영혼 하나가 알아서 걸어왔네요."

"네 덕분에 포식하겠다, 오늘."

섬뜩한 눈빛들이 동시에 쳐다봤다. 그 순간 퍼뜩 무지의 공간이 떠올랐다.

"여... 여기 꿈이구나!"

눈을 꼭 감고 외쳤다. 이제 모두가 날 덮쳐도 그 공간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럼 안전하겠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들리는 건 오직 친구의 웃음소리뿐이었다.

"하하하. 이런이런. 안타깝네. 이제 그건 소용없을 텐데."

소용이 없다는 말에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위압감이 들었다.

"너 나한테 먼저 들켰잖아.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친구는 활짝 웃으며 그대로 달려들어 나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아팠다. 왜? 대체 왜 아픈 거야? 여긴 꿈인데? 이내 다른 이들도 나의 다리, 나의 팔, 나의 허리 온몸 구석구석 한 군데도 빠짐없이 물어뜯었다. 괴로워. 괴로워. 이곳에서 나갈래. 나의 신체의 모든 부분이 잘근잘근 잘려나가고 있었지만 깰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톨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순간 잠들기 전 풍경이 펼쳐졌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악몽이었나.

"잠깐. 왜 내가 왜 여기 있지?"

몸이 너무 무겁다. 주체할 수 없이 무너진다. 다시 잠에 드는 걸까. 현실...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근데 거기가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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