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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념하다

해파리가 되고 싶어

짧은 소설

by 유념

"넌 뭐가 되고 싶니?"

"해파리요."

모두가 이 대답을 들었을 때 의아해했다. 왜 다른 멋진 것들이 아닌 하필 해파리냐고 되물었다. 또 가끔은 장난치지 말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언제나 난 진심이었다. 늘 해파리가 되고 싶었다. 이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해파리가 되고 싶었다.


해파리를 처음 본 건 어릴 때 유치원에서 단체로 수족관 투어를 갔을 때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수조 안에 답답하게 갇혀있는 해양 동물들을 보며 어딘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투어 내내 답답한 가슴을 콩콩 치는 것에만 신경을 쏟았다. 다들 두리번거리며 눈을 반짝이고 있을 때 나는 그저 앞서가는 동그란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라 부르는 마지막 공간에 도착하기 직전엔 이미 잔뜩 지쳐있었다.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 문턱을 넘었을 때 드디어 끝이구나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해파리 떼가 마치 온몸으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밝게 빛나며 유유히 물속을 헤엄치는 고대 생물 같기도, 외계인 같기도 했다. 그 오묘한 모습에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아마 그 순간은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넘쳤을 것이다. 답답했던 가슴은 어느새 뻥 뚫린 듯 시원했다. 그 뒤로 해파리를 좋아하게 됐다. 말랑해 보이는 모습 뒤에 무시무시한 독이 있다고 한들 그마저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거친 바닷속을 여유롭게 떠다니지만 누군가 자신의 공간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있는 힘껏 지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생에 단 한 번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자살률 1위의 나라인 동시에 행복지수 꼴찌의 나라. 온갖 불행의 타이틀을 거머쥔 나라의 실상은 더욱 참담했다. 날이 갈수록 침체되는 사회 분위기 속 새로운 주장이 떠올랐다.

'인간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로 살아야 한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모두가 비웃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음보다는 오히려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결국 나라에서는 선택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아니었고 현실에 지쳐버린 일부의 사람들만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가더라도 그저 자신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살률이 점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도 사실 죽기보다는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자연에 직접적으로 귀속되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가족들은 환경친화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인간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다른 어떤 환경정책보다 눈에 띄게 좋은 결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하다고 비난받던 것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사회적 안전망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종교, 어떤 정당, 어떤 단체는 한편에서 여전히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간은 인간으로 죽어야 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날만 기다리고 있다. 해파리가 될 그날을.


인간의 삶을 포기하고 해파리로 살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냐고 물어본다면 확실히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보다는 해파리의 삶이 나에게 더 맞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인간의 세상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빠르다. 자고로 인간이라면 뭔가를 끊임없이 해내야만 했으며 지체할 틈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그대로 주저앉기 일쑤였으니까. 모두가 하나같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그저 앞만 보며 달려야 하는 경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이런 이상한 세상에 대해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원래 다 그렇게 산다며 오히려 나를 유별나게 바라봤다. 이런 삶은 아무래도 진저리가 났다. 굳이 꾸역꾸역 버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좋은 기회라니.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른 생명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DNA 전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한 번 바꾸면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여러 단계를 거쳐 당사자가 완전한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 확인되어야만 진행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눈빛이 흔들리거나 망설이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면 좀 더 심층적인 인터뷰가 다시 시작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과 비슷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친 이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 전에 이곳에 와 자연스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병원에 가기를 꺼리거나 주변 시선이 두려운 이들에게는 어쩌면 좋은 일이다. 그래서 사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다른 생명체가 되기보다는 다시 인간으로서 삶을 이어 나가는 걸로 결정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게 정부에서도 원하는 방향이었을 것이다. 가끔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가기 위한 수단으로 오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절대 불가하며 있는 한 번의 기회마저 박탈된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그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게 현 정부의 생각이다. 나는 해파리로 살고자 하는 완전한 확신을 가졌을뿐더러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기에 어렵게 않게 마지막 단계까지 와있다.

"당신은 해파리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셨나요?"

"네."

드디어 그렇게 염원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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