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꿈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떠오르는 것들이 없어진 지 꽤 된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고작 꿈에 대한 얘기나 하자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질문들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살인을 했다. 단지 참을 수 없어서.
그 아이를 증오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저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싫어했던 거 같다. 아니 사랑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미워했나 보다. 그 미움의 구멍이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했던 거 같다. 이게 작아질 때 사랑이라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힘들었으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그 아이의 다른 이면을 의심하고 불평했을지도. 나처럼.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그 아이의 잘못인 것이다. 뭣도 없는 게. 왜 그렇게 으스댔는지, 솔직히 말하면 꼴 보기 싫었다. 아아. 사실 증오했다보다.
어느 날 너는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였다. “얘 나는 있지. 모든지 가능해. 아마 미래의 나는 정말 멋질 거야. 난 믿어.” 대놓고 뭘 믿고 그러느냐 묻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맑은 얼굴을 보니. 정말 그럴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어쩌면 조금은 들기도 하였다. 아니 사실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때는 미움의 구멍이 작았으리라.
그 아이는 나를 사랑한다 하였다. 가끔 싸워 토라지는 일이 있어도 금세 와 쫑알거리기 바빴다. 단순했다. 좋으면 좋았던 아이였다. 그 모습이 싫었다. 복잡한 나와는 다르게 모든 걸 단순하게 감정을 정리해 보이는 것이. 쉬워 보였나. 그래. 너는 모든 게 쉬워 보였다. 나의 커다랗고 무거운 감정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만들었다. 이런 나의 옆에 네가 있다는 게 가끔은 다행이었다. 싫고도 좋았다.
지치는 날이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그저 우울한 감정이 내 구석구석 들쑤시고 있었다. 눈치도 없이 너는 다가왔다. 왜 그러느냐 걱정하는 얼굴을 보니 속에서 무언가 들끓었다. 네 잘못도 아닌데. 아니 따지고 보면 너의 잘못이다. 네가 그렇게 속없이 해맑지만 않았어도 나는 희망 따위의 단어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미움의 구멍은 커지고 커져 가리려고 해도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 왜 내 앞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참을 수 없었다.
탕.
귀를 찢을 듯한 커다란 소리를 끝으로 이 길고 긴 메시지는 끝이 났다. 무엇인가 끊어진 듯 삐- 하는 소리만 텅 빈 공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