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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념하다

낮잠

짧은 소설

by 유념

분명 방금 전까지 나는 햇빛이 아스라이 들어오는 반지하 방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인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니 낯선 곳에 뚝 떨어진 듯 어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어디더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익숙해지는 감각에 이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여기와 있지. 사람들의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폐건물인 것 같다. 어디선가 본 거 같기도 하고.


"야."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겁도 없이 나오라고 나오네. 바보 같은 새끼."


거친 손길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지만 그저 몸을 웅크린 채 힘없이 웃어 보였다.


"뭐가 좋다고 웃어. 기분 나쁘게."


그 애는 표정을 굳히더니 손바닥으로 나의 볼을 탁탁 쳤다.


"미, 미안."


미안할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왜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됐고. 너 오늘 돈 받았지?"

"그렇긴 한데…."

"같은 반 친구끼리 돕고 살자. 내가 용돈을 다 써서 쓸 돈이 없네? 나중에 갚을게."


저번에도 똑같이 말하고는 주지 않았다며 따지고 싶었지만 누가 입에 자물쇠라도 잠근 듯 쉽게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이 다시 그 애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눈썹을 찡그리더니 곧바로 손을 들어 옆통수를 세게 가격하였다. 뒤이어 뭐라 말하는 듯했지만 귀에서는 잠시 삐 소리만 들릴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죽고 싶냐? 바빠죽겠는데 왜 빨리 대답을 안 해."


죽고 싶지 않다. 오히려 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번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나는 멍자국과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이 역겨웠다. 울렁거리는 속을 네 얼굴에 그대로 게워내고 싶었다. 그래.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손에 커다란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렀다. 마치 한 프레임처럼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어졌다. 날 괴롭히던 그 몸뚱이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폼이 볼 만했다. 순간 나를 두려워하는 눈빛이 짜릿했다.


"너, 너 뭐 하는 짓이야!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아직도 당당하게 소리치는 꼴이 같잖았다. 지금 나는 너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한번 더 가볍게 내려쳤다.


"아아아악."


아무도 듣지 않을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


웃음이 났다. 앞에 있는 너는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것들 때문인지 자꾸 눈을 깜빡이며 손을 휘적거렸다. 보기 싫게.


"미안해. 잘못했어. 살려줘."


그 애는 슬금슬금 몸을 일으켜 도망가려는 듯했다. 그럼 안되지. 이번엔 다리 쪽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 애는 움직임을 멈췄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금방 흥미를 잃었다. 바닥은 이미 흥건해져 있었다. 이런 건 딱 질색인데.


"자는 거야?"


내 물음에 돌아오는 답이 없다.


"뭐야. 바빠죽겠는데 왜 빨리 대답을 안 해."


여전히 대답 없는 그 애를 기다릴 수 없어 말을 이어갔다.


"사실 바쁘진 않아. 그냥 좀 피곤하네. 곧 추워질 텐데 얼른 일어나서 집에 들어가. 난 먼저 갈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 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건물을 빠져나왔고 그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 참 이상한 꿈이었다.


어느새 주변은 어둑해져 있고 햇빛은 가로등빛으로 바뀌어있었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득 손에서 느껴지는 찝찝한 느낌에 팔을 접어 눈앞으로 손을 가져왔다. 알 수 없는 액체가 잔뜩 묻어있었고 상태를 보니 한참 동안 손에 엉긴 채로 말라있었던 것 같다.


"더럽네. 씻어야겠다."


천천히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가는 데 창밖으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마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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