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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04. 2022

철밥통이라 감사합니다

역무원으로 일하는 보람

 역무원은 시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기에, 직장인이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한다. 우리는 철밥통이기에 짐도 맡아주고, 돈도 빌려주고, 관광안내도 해야 한다. 업무를 벗어나는 일을 거절하고 싶어도, 불친절하다는 민원 앞에서 역무원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죄송한데, 저희 아이가 숙제로 직업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혹시 인터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당했다. 이제 숙제까지 도와줘야 하는구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아버지의 조심스러운 부탁이었지만, 황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바쁘지 않을 때라서 얼른 인터뷰를 끝내고 나의 업무공간에서 내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준비해온 질문지를 또박또박 읽었다.


하나, 역무원은 어떤 직업인가요?

둘, 역무원으로 일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든가요?

셋, 역무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 인터뷰랄 것도 없는 간단한 질문 세 가지가 다였다. 인터뷰를 하지 않고 지어낼 수도 있을 법했다. 하지만 아이아버지는 거짓으로 숙제를 완성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정중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똘망 똘망 한 아이를 보는 것은 내게도 나름 훈훈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훈훈함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부자는 감사하다며 뜻밖에 홍삼 선물세트를 꺼냈다. 김영란 선생님이 보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만한 물건이었지만, 감사하게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마음은 감사하지만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자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는 듯싶더니, 다시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김영란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의 사정을 눈치챘던 걸까? 비닐봉지 안에는 편의점에서 산 따끈한 커피와 과자가 있었다. 아이아버지는 다양한 경험뿐만 아니라, 정중히 부탁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법을 교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함박웃음으로 그 감사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일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백발의 어르신들부터 요금을 낼 나이가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까지. 사실 평범한 직장인 중에 일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감사의 말들이 모여 또 하루치의 봉사 같은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철밥통이라서 오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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