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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Oct 11. 2022

고객님 다시는 오지 마세요!

지하철에서 만난 동물들

 수달이 산다는 개울 옆에 있던 한산한 역이 있었다. 워낙 승객이 적어서 직원 한 명이 일 하다가 결국 사회복무요원들만 근무하는 것으로 바뀌고 직원들은 역 관리를 위해서 가끔 들리기만 하는 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만큼 업무는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환경이 좋지 않았다. 개울이 옆에 있다 보니 여름에는 그야말로 벌레와의 전쟁이었기에 큼직한 포충기가 금세 고장 나버리곤 했다. 사람은 없어 적막하고, 벌레는 많아 귀찮은 그곳에서 이십 대 초반의 사회복무요원들은 그들만의 기발한 소일거리를 만들었다. 개울 근처에서 잡은 조그마한 도마뱀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포충기를 고장 내던 많은 벌레들은 도마뱀의 풍족한 식량이 돼주었다. 역장님도 그들의 취미생활을 허용해 주셨다. 단, 승객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워낙 한산한 역이다 보니 도마뱀에 대한 민원을 넣는 고객은 다행히 없었다. 도마뱀은 한동안 안락한 환경에서 이등병 생활을 하다가 사회복무요원들이 슬슬 지겨워지자 전역하여 개울가로 돌아갔다.


 도마뱀을 키우던 역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내가 근무하는 큰 도매시장이 있는 역이 나왔다. 도매시장이 있는 역도 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은 천고가 높았던 탓에 셔터를 열기 무섭게 새들이 날아들었다. 새 고객님들은 주로 천장의 배관에 머물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알아서 밖으로 나가셨다. 셔터를 닫기 전에 새들과 나가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간혹 새 고객님들이 천장에서 내려와 화장실이라도 가시면 깜짝 놀란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럴 때면 역무원들은 선로에 떨어진 유실물을 찾을 때 쓰는 기다린 집게를 들고 새 고객님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는 강한 경고를 줘야만 했다. 그러고 나면 새 고객님들은 한동안은 역사의 질서를 잘 지켰다.


 그 역 주변에는 개도 고양이도 참 많았다. 특히 도매시장 옆에 있던 편의점에는 터줏대감 같은 고양이들이 항상 있었다. 녀석들은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갈 때는 눈길 한번 안 주다가 비닐봉지를 들고 나오면 갑자기 꿈에 그리던 집사를 만난 듯 친한 척을 했다. 어찌나 애교스럽게 야옹거리며 온몸을 비벼대는지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에도 야박하게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웃으면서 고양이들에게 소시지도 뜯기고, 빵도 뜯겼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편의점을 벗어나 역사에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졌다. 고양이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달려가 보면 자신이 역에서 쫓겨날 운명인 것을 모르는 고양이가 동그래진 눈으로 우리를 반겼다. 검은 유니폼 바지에 털을 묻혀가며 티켓 말고 츄르를 내놓으라고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졌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들을 역사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도매시장 역에서의 예정된 시간이 다 지나고 나는 도시 한가운데 있는 역으로 오게 되었다. 한적한 시골 같았던 도매시장 역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동물 고객님들을 보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간간이 동물로 인한 실랑이는 벌어진다. 주로 이동장을 이용하지 않는 보호자들 때문이다. 이동장 사용은 동물과 사람 모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물이라면 사람이 키우는 반려동물이라도 여전히 지하철 안에서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이 가끔 서글프다.


 그래도 이 도시 한복판에 있는 역에는 살 수 있도록 허용된 동물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종교시설의 주도로 조성된 조그마한 연못에 사는 금붕어들이다. 어떤 동물들은 역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데 어떤 동물들은 돈과 시간을 들여 역에서 살게 하다니. 삶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은 때때로 색색깔의 금붕어에 현혹돼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연못을 들여다보곤 한다. 저 인위적인 연못도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인 것이다.


 나의 업무 중 하나가 된 금붕어 먹이주기를 하면서 가끔은 금붕어처럼 고양이를 역에서 키우면서 좋지 않을까 상상한다. 셔터를 열면 고양이 역장님이 순찰을 돌고 바짝 치켜든 꼬리로 이상 없음을 알리는 것이다. 직원들은 역장님 화장실의 감자와 맛동산을 캐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평정 철이 되면 너도나도 역장님께 츄르를 바치고, 누군가 승진이라도 하면 츄르탕에 멸치 안주로 회식도 한다. 고양이 역장이라니, 상상만 해도 애사심이 넘쳐흐른다.


 츄르탕에 회식할 생각을 하며 혼자 킥킥대다 보니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내 모습을 보시곤 "뭐 재미난 일 있는교?" 하며 다가왔다. 하지만 재밌는 일은 없고 밥 먹느라 뻐끔거리는 금붕어들만 보이자 "에잇, 생선이네." 하고 혀를 차며 가버렸다. 누군가에게는 색색깔의 보석 같은 금붕어가 누군가에는 냄새나는 생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에 허용된 유일한 동물인 금붕어도 한순간 생선이 되어버리는데 고양이 역장님이라니. 민원만 양산해낼 나의 허무맹랑한 상상일 뿐이라는 게 따끔하게 와닿는다.


 나는 여전히 역에 있어서는 안 되는 동물들을 역사 밖으로 내보낸다. 그것이 공공을 위해, 안전을 위해 백번 타당한 일이지만 가끔은 이 말 못 하는 고객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천장 배관 틈에서 삐약삐약 살려달라고 우는 새끼 고양이, 며칠을 굶었는지 한 손에 잡히도록 야윈 채 탈진해있는 고양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역에서 길을 잃은 고양이를 만나면 역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안전하게 역사 밖으로 보내주는 것뿐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단체에 보냈다가 일정 기간 내에 입양이 되지 못하면 안락사될 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보호단체의 손도 빌리지 않는다. 다시 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멀리 놓아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다. 사람의 손길이 익숙하지 않은 고양이들은 탈진해있다가도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펄쩍펄쩍 뛰어 금세 사라진다. 그렇게 또 한 마리를 보내고 나면 나는 고양이가 사라진 자리에 물과 간식 캔을 놓아주며 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고객님 안녕히 가세요. 다시는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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