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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Nov 03. 2022

죄하철

지하철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곳일까?

 뭔가 싸한 느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모르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젊은 남자가 역무실에 들어왔을 때 그런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역사 내에서 열쇠를 습득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확히 '물품 보관함 열쇠'를 주웠다고 말했다. 누군가 흘린 열쇠를 주운 사람이 그게 어디에 쓰는 열쇠인지 알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느낌은 느낌일 뿐이기에 나는 여느 때처럼 유실물이라는 열쇠를 받아 유실물 통에 보관했다. 유실물 통의 물건들은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는다면 다음날 유실물 센터로 보내진다. 그런데 이 열쇠는 왠지 분실자를 가장한 누군가가 찾으러 올 것 같은 촉이 왔다.


"수상한데요. 이게 물품 보관함 열쇠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보이스피싱 같은 건 아니겠죠?"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에잇, 설마. 아닐 거야. 그냥 유실물 같은데."


 나는 그 남자가 무인 물품 보관함을 범죄에 악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동료들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말 한마디 했다고 사람을 범죄자로 의심하는 내가 의심병이 돋은 걸까?


제시: 폐차장? 선생님이 골랐죠?
월터: 폐차장이 어때서? 은밀하잖아.
제시: 이래서 선생님더러 아마추어라는 거예요. "영화 보니까 이런 데서 만나더라" 이거잖아요.
월터: 그래서 넌 어디서 만나는데? 한 수 가르쳐줘.
제시: '타코 카베자(식당)'도 괜찮잖아요. 지금까지
  거래의 반은 타코 카베자에서 했다고요. 공공장소인
  데다 24시간 영업하거든요. 총질할 위험도 없죠. 맞다.
  쇼핑몰도 있네. '갭(옷가게)'에서 얼쩡거리다가
  "어, 시간 됐네" 때 되면 카키색 바지 입고 생과일주스
  마시며 가면 되잖아요. 사이코 투고한테 약도
  목숨도 다 뺏길 위험도 없고요.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는 신참 마약상 월터 화이트가 마약 거래 약속을 폐차장으로 잡자 동업자이자 경력직 마약상 제시 핑크맨이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제시가 묘사하는 저 장소들. 누가 가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정당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는 곳. 일이 잘 못 되더라도 상대편에게 공격당하지 않는 곳. 어쩐지 지하철과 꼭 맞아떨어진다.


 당시에 내가 일하던 역은 우리 호선에서 수송인원이 많기로 Top 3 안에 드는 곳이었다. 백화점과 연결돼 있고 근처에 회사들도 많아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백화점에서 이상한 연락이 왔다. 환승통로에 있던 백화점 화장실에서 버려진 주사기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소름이 끼쳤다. 마약은 뉴스에서나 나오는 먼 일인 줄 알았는데 우리 역이라니. 순찰은 강화됐지만 특별한 소득은 없었다. 사법권도 없는 역무원들이 화장실 앞에서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는 뜻밖의 곳에서 벌어졌다. 그 화장실의 쓰레기통에 누군가 방화를 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불은 크게 퍼지지 않고 금방 진화됐다. 그 화장실은 결국 저녁 10시에 조기 폐쇄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승강장에서 마약으로 추정되는 봉투가 발견됐다. 맛소금이나 미숫가루는 분명히 아닌 그 가루는 경찰에 넘어갔다.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일반적이지 않은 말 한마디 했다고 사람을 범죄자로 의심하는 내가 의심병이 돋은 걸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그을린 검은 피부에 피부만큼이나 어두운 옷과 모자를 쓴 중년의 남성이 역무실을 방문했다.


"물품 보관함 열쇠를 분실했는데요."


 모든 역무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남자를 쳐다봤다.


"혹시 몇 번인지 아세요?"

"C14번이요"


 남자는 외운 듯이 망설임 없이 번호를 말했다. 우리가 보관하고 있던 열쇠는 정확히 C14번이었다. 의심은 더욱 깊어졌지만 경찰에 신고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유실물을 분실자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남자에게 열쇠를 건네는 손이 떨릴까 봐 잠시 숨을 참았다. 중년의 남자가 역무실을 떠나자마자 역무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시계를 쳐다봤다. 혹시 모를 경찰 수사에 도움이 되려면 남자가 방문한 시간을 기록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틀림없다고 믿었다. 역시 촉이 좋다며 잠시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피해를 호소하는 이도, 수사를 하겠다는 형사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똥촉이 중고거래를 편하게 하려던 꼼수를 범죄로 착각한 건 아닐까 싶다. 만약 처음 방문한 젊은 남자가 "당근 당근!"을 외쳤다면 그를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물건을 맡아주지도 않았겠지만. 이런 역무원들의 업무방식을 알고서 유실물이라는 거짓말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다면야 나는 머쓱하겠지만 아무도 피해를 본 이는 없으니 다행스러운 결말이다.


 '지하철이 범죄의 온상이라고 역무원이 고백하다니! 당장 내일부터 버스를 타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월급 루팡을 꿈꾸며 승객 수를 줄이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지하철의 공공성이 오히려 범죄자들이 숨어들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것 또한 공공성이다. 우리 지하철에서는 최근 이틀 만에 세 건의 방화사건이 있었다. 세 건 모두 승객들의 적극적인 신고 덕분에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안전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 또는 무조건적인 폐쇄 조치보다는 수상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와 조치, 그것이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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