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하느냐 거절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역에서 짐을 보관해 주지 않는 이유
코흘리개 신입사원 시절, 내가 처음으로 발령받은 역은 큰 시장을 끼고 있었다. 새벽부터 장 보러 오는 손수레 부대 할머니들의 바퀴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 역에서는 짐이 잔뜩 들어있는 손수레나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큰 시장이 옆에 있는 데도 그 역에는 이상하게 물품 보관함이 없었다. 선배들 말에 의하면 원래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물품 보관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도 사람들은 물품 보관함을 버젓이 옆에 두고 다들 역무실에 짐을 맡기려고 했고 장사가 잘 안 되는 물품 보관함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물품 보관함이 없다는 핑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역무실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은 짐을 맡기려는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절대 짐을 맡아주지 말라는 선배와 민원 생기니까 그냥 맡아주라는 선배들 사이에서 신입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지금이야 그 정도 일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지만 당시에 나는 선배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무조건을 외치는 신입 꾸러기일 뿐이었다. 잘 못 하다가는 물건을 맡아줘도, 안 맡아줘도 선배들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업무수첩에 물품 보관을 칼같이 거절하는 거절파와 민원 방지를 최우선에 두고 물건을 보관해주는 보관파 선배의 명단을 비밀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보관파 선배들과 일할 때는 고객들과 실랑이가 줄어드니 편하긴 했다. 죄송해야 할 일이 줄어드니 정신건강에도 좋아 역시 보관파가 정답인 것도 같았다. 다 똑같이 생긴 비닐봉지에 아슬아슬하게 붙은 포스트잇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동의서도 없이 받은 개인정보에 대해 누가 딴지를 걸지만 않는다면, 맡아준 짐이 사실은 돈 내고 버리는 게 싫어서 짐인 척 맡기고 간 쓰레기가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가끔 금방 온다며 맡기고 간 커다란 손수레를 교대시간이 다 되도록 찾아가지 않기도 했지만 거절파 선배들한테 애정 어린 충고를 들으면 되는 일이었다. 선배들의 따뜻한 충고가 지나치게 따뜻해서 눈에서 땀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거절파 선배들과 일할 때는 손수레 부대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미운 정을 쌓을 수 있었다. 개인 짐을 보관해 줄 수 없는 많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역무원의 입장이지 손수레 부대 할머니들의 알 바는 아니었다. 누구는 해주던데 왜 안 해주냐, 늙은이 불쌍하지도 않냐며 하루 종일 욕을 먹었고 하루 종일 죄송해야 했다. 그래도 의리의 손수레 부대는 앞에서 시원하게 욕 한 사발을 퍼주면 줬지 민원을 넣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쌓인 미운 정이 한도를 초과한 어느 날 나는 콜센터에 접수된 불친절 민원의 대상이 되어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다. 나는 민원을 넣은 고객보다 경위서를 쓰게 하는 회사가 더 미웠다.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던가, 그게 아니면 물건을 맡아주지 않았다고 직원을 닦달하지는 말아야 할 게 아닌가. 사고가 나면 왜 맡아줬냐, 민원이 들어오면 좀 맡아주지 그랬냐. 나는 또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나는 승객들과의 실랑이 따위 5분이면 잊어버리는 거절파로 거듭났다. 개인의 짐을 보관해 주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쇼핑몰, 콘서트장과 붙어 있는 역은 물품을 보관해주기 시작하면 그 수요가 금세 늘어나서 두 세명의 근무인원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물품보관함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와의 이해충돌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짐 보관을 위한 장소와 장비, 보험을 모두 구비하고 서비스를 개시하지 않는 한 분실과 파손에 대한 모든 책임은 역무원 개인이 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역에서는 한 고객이 다 먹은 치킨박스를 맡겨놓고 몇 시간 뒤에 찾아와 역무원이 치킨을 먹었다고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다행히 치킨박스는 CCTV 아래에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영상을 보여줬더니 고객은 정신을 차리고 치킨박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칼 같은 거절파가 되지는 못했다. 오늘도 두 건의 물품보관 요청을 받았지만 한 건은 정중한 거절에 성공했고, 다른 한 건은 제발 5분만 다녀오겠다는 부탁을 이기지 못해 짐을 보관해 드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5분이라는 약속이 지켜졌다. 스스로를 거절파라 여기는 지금도 나는 보관파와 거절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원이 들어오지 않게 거절하기란 아직도 어려운 과제다. 아마 내가 퇴직을 하는 그날까지도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보관하느냐 거절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