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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12. 2022

나는 네가 지난 명절에 한 일을 알고 있다

CCTV는 다 보고 있다

 지하철에는 데이트 명소가 몇 군데 있다.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있는 게이트는 로맨틱하기로는 최고봉이다. 가끔 순찰을 하다 게이트 앞에서 부둥켜안고 매달려 있는 연인들을 보면 확 찢어놓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잠시 스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명소는 바로 엘리베이터다. 고개를 살짝만 들면 CCTV가 있는데, 사랑에 눈이 먼 건지 엘리베이터에서 그렇게들 뽀뽀를 하신다. 아주 잠깐 입술이 부딪친 건데 어떻게 보냐고? 다 보인다. 꼭 보고야 만다. 이상하게 엘리베이터에서 스킨십만 하면 딴짓을 하다가도 CCTV 화면에 눈길이 간다. 이런 능력을 가진 역무원이 나뿐만이 아니니, 그냥 이례상황에 대한 역무원의 빠른 순발력 탓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CCTV로 보게 되는 것은 사랑의 장면만은 아니다. 지난 설 명절에 역무실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문제의 영상이 찍힌 것은 설날 당일이었다. 당시 야간근무조였던 나는 주간조로부터 성추행 신고가 들어왔으니 CCTV 영상으로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확인해 두라는 인계를 받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신고한 여성들을 뒤따라 가는 남자가 화면에 나왔다. 그 영상에서는 남자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성추행인지 명확한 증거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같은 영상을 보고 우리 조 사람들이 용의자를 제각각 다르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말랐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뚱뚱하다고 했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비추는 CCTV 화면이 실제 비율과 달라, 같은 영상을 보는데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다른 각도에서 나온 영상이 없는지 찾아봤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남자가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봤다. 아무리 찾아도 남자는 게이트도, 에스컬레이터도 이용하지 않다가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수상하다. 조금 더 앞으로 영상을 돌렸다. 남성이 다른 여성을 뒤따라 가는 장면을 찾아냈다. 편의점에서 나오는 여성을 기다렸다는 듯 따라가 에스컬레이터에서 실수인 척 몸을 접촉하는 것이 보였다.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용의자의 인상착의는 중요하지 않았다. 캐보면 뭔가 더 나올 것 같은 느낌에 영상을 자꾸만 더 앞으로 앞으로 돌려보기 시작했다.


  두 명의 또 다른 여성들을 따라가는 장면이 나왔다. 이번에도 남성은 여성들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리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남성이 한쪽 손을 바삐 움직이며 자신을 위로하는 장면을. 맞다. 당신이 지금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아주 명확하게, 매우 적나라하게, 그것도 에스컬레이터 CCTV 바로 아래에서, 그 짓이라고 하기에는 성에 안 차는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지상에 다다르며 자기 위로를 끝내야 했던 남성은 환희에 차 펄쩍펄쩍 뛰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 첫 자기 위로의 강한 쾌감 때문인지, 남성은 그 뒤로 계속 같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여자들을 뒤쫓았던 것이다.


 경찰에 해당 사실을 추가로 알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교대시간에 우리가 찾은 영상을 본 직원들은 저마다 탄식과 썩소를 날리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차마 그 짓거리를 직접 입에 올리기가 민망해서 제대로 된 경고를 해주지 못한 탓에 신입 남자 직원은 너무 놀라 의자 채로 뒤로 넘어졌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넘어지면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 뒤로 며칠간 순찰이 강화됐다. 영상을 하도 뒤지다 보니 걸음걸이만 봐도 바로 그놈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놈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제발 이번 명절에도 나타나지 마라. 나는 네가 지난 명절에 한 일까지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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