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포개진 단면을 세로로 자른다. 바삭한 질감의 겉 껍질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건 나중에 손가락을 이용해도 되니까. 중요한 건 단면의 층을 지키면서 적당한 두께로 바르게 자르는 것. 그렇게 한 조각의 죄의식이 내게로 온다.
포크를 세로로 세워 조심스레 한 입을 떼어낸다. 들큰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하고 동시에 입 안의 모든 미뢰를 일어서게 만든다. 입 안에 작은 조각을 넣으면 바삭한 겉 껍질이 잘게 부서지며 질감이 주는 불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달아 나를 안달나게 만드는 건 크림의 질감. 한낱 크림에 인생의 달콤함과 씁쓸함, 부드러움과 무자비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자극 안에서 나란 존재는 너무나 무력하다.
익히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라 했다. 나폴레옹제과점의 롤케이크 ‘구로칸토 슈니탱’의 때깔을 보자마자 침이 고이는 걸 피할 방법을 나는 모른다. 아무리 전날 밤에 ‘내일부터는 단 거를 절대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별 소용 없는 짓이다. 아는 맛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란 한낱 거품에 불과하다.
간식을 자제하고 안 하고를 고민한다는 사실이 하찮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인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생존의 문제도 아니고 기껏해야 뱃살에 기름기 한 스푼 더 보탤 뿐인 걸.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이런 고민이 는다는 점에 있다. 기왕이면 “사느냐 죽느냐” 류의, 좀 더 철학적인 고민이면 좋겠는데 ‘직장인의 점심 메뉴 고민’만큼 치열한 게 또 어디 있겠나 싶은 거다.
어쩌면 태도 문제인 지도 모르겠다. 순간의 도파민 분비가 하루의 질을 좌우하는 나 같은 사람이 좋아하는 간식을 어떻게 지나치겠나. 아무리 ‘길티 플레저’라지만 이름마저 마음에 드는 것을 어쩌겠나.
그러자니 매일을 수도승처럼 사는 게 좋을까 싶다. 요즘엔 ‘육각형 인간’이니 ‘갓생’이니 하는 청년들도 많던데. 그들의 하루가 보람차긴 하겠지만 그게 구로칸토 슈니탱을 상쇄할 만큼일지 도무지 모르겠다.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걸 참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성공하는 데는 지름길이긴 하겠다. 하지만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조건을 갖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군가는 돈이나 권력을 얻는 게 성공이고 행복일 테지만 누군가에겐 지금 이 순간의 얄팍한 도파민 충족이 행복이 아닐까 싶은 거다.
아니다. 이건 그냥 개소리다. 그저 평생 때를 놓치고 후회만 남은 사람이 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구로칸토 슈니탱을 정신줄 놓고 퍼먹다가 건강이고 나발이고 다 놓치게 될 수도 있는 게 현실이 보여주는 냉엄함이다.
그러니 균형 감각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는 일상이 이런 식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가끔 줄에 서 있는 균형 감각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질러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땅에 떨어지기 전에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장 지방과 바꿔 먹은, 달콤한 죄의식을 다루는 법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