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adilla 퀘사디아
여름에 요리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2주간 내 점심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콩국수였다. 전날 콩을 불려 다음날 15분간 끓여, 블렌더에 갉아 면 투하. 요리 종료. 고로, 내 콩국수는 차갑지 않고 뜨겁다. 온도 불문, 차갑든 뜨겁든 여전히 맛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내일 점심을 미리 조리했다. 오늘 내내 습도가 97%였다. 비는 안 오는데, 습도가 가혹했다. 곱슬인 내 머리도, 같이 사는 장묘, 쟈니도 털이 몇 배로 불어 있다. 내일도 더울 텐데... 해답은, 해가 없어 선선할 때 요리하는 게다. 처음엔 내 브런치에서 레시피를 찾았다. 자주 해 먹는 요리인데도 아직 글을 등재하지 않아 의아했다. 이런 정신머리.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멕시코로!
홍대에서 캔맥 들고 버스킹을 구경하면서 출출해지면 타코벨에 들러 빈브리또를 먹곤 했다. 그런데 나의 빈브리또를 한국 타코벨이 더 이상 팔지 않게 되어 한동안 잊고 살았다. 여긴 북미니까,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멕시코 요리가 많이 대중화되었기에 다시 타코벨에 들러봤다. 빈브리또가 있다. 종종 퇴근하고 다음 날 점심을 싸기 귀찮은 날은 타코벨에 들러 빈브리또를 사곤 한다. 한국에 라면과 삼각김밥이 배고픈 대학생들의 끼니를 해결해준다면, 캐나다는 멕시코 음식이다. 대용량으로 한솥의 칠리를 만들어 밥에, 브리또에, 혹은 스파게티 면에 섞어서 계속 먹는다. 학생 때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 갑자기 이웃이 가찹게 느껴지는 주말 아침이다.(아직 잠 덜 깸)
내 퀘사디아에는 강낭콩이 주재료이다. 엄밀히 말하면 강낭콩과 고수이다. 한 번은 고수 없이 레시피대로 만들었으나, 원래 알던 맛이 안 나서 적잖이 당황했었다. 전 날, 마트로 장을 보러 가 한 달 동안 볼 수 없었던 고수를 샀다. 내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수는 발육이... 느리다. 겨울이 오고 있다...
사진으로 보면 고수 밭이다. 처음에만 어렵지 익숙해지면 고수가 식욕을 오히려 돋아준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생전 고수를 무척 좋아하셨다. 고수로 김치를 직접 만들어 드실 정도였다. 뿌리 부분도 달달하다고 버릴 게 없다고 가르쳐주셨는데, 과연 이걸 해드렸으면 드셨을까?
퀘사디아 소로는 캔 강낭콩과 파프리카 가루,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마늘(한국처럼 생마늘 먹는 멕시코인들 역시ㅋ), 소금 정도가 다이다. 파프리카 가루는 없어도 맛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강낭콩 때문에 힘도 못 쓰고 색감정도 내고 퇴장한다. 난 고수 덕에 고수 맛 반 강낭콩 맛 반으로 먹었다. 치즈는 고다를 썼다. 워낙 향이 센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치즈는 그저 식감이다. 그래서 내일 없이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치즈를 퍼부웠다. 토요일이니까.
오랜만에 무알콜 맥주로 반주삼아 낮술과 점심을 먹기로 한다. 토요일이니까.
Cover Photo by Emir Saldiern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