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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고수를 뽑으러 나갔다가 2개월의 기다림만에 만난 봉선화 꽃들을 봤다. 친구를 불러 같이 손톱에 물들일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너무 기분이 좋다. 평소에 '너무'를 남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오늘은 감정이 이성을 제쳤다. 5년 만에 만나는 봉선화라 더욱 뜻깊다.
무엇보다 타국에서 살면서 다른 문화를 체득하는 과정도 빠질 수 없는 재미다. 예컨대, 생전 처음으로 들과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고사리를 따는 걸 타니카에게 배웠던 거며, 버터컵을 턱에 비춰 반사되면 버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엉뚱한 놀이도 롸져에게 배웠다.
만개한 꽃의 개수가 좀 되면, 이번엔 타니카에게 내가 알려줄 차례다. 올봄에 롸져에게 내가 고사리를 따는 것을 가르쳤듯이. 아, 재밌어.
좋은 음식을 먹어서 한층 기운이 난다. 오늘은 베트남으로 간다. 포는 예전에도 한 번 해봐서 어렵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 다른 점이라면, 일부러 포를 염두에 두고, 지난번 집 뜰에서 바비큐를 할 때, 양파를 네댓 개 구워두었다. 사골 국물의 뼈 대신, 난 구운 양파와 육두구와 정향, 표고버섯, 브러슬로 채수를 40분간 우렸다.
채수를 만들고 나면 다음 과정은 참 간단하다. 면을 삶아 준비해 각종 채소를 기호에 맞게 넣는다. 냉장고에는 오이와 양배추가 있었다. 고수는 워낙 좋아하는 풀이라 밭에서 한 줌 따서 넣었다. 사진으로는 감이 안 오겠지만, 첫 번째 사진은 차가운 포이고 두 번째 사진은 일반 포다. 뜨거운 건 뜨거운 대로 차가운 건 차가운 대로 맛있다.
일단 덥고, 배가 부르니 눈꺼풀이 정말 무겁다. 이럴 땐 다 제쳐두고 파워 낮잠이 답이다. 내 앞날은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9월 전후로 다를 테니까... 기회가 있을 때 부른 배 두드리며 꿈벅 잠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아니한가?
Photo by Rachael Henning on Unsplash
Cover Photo by Ruslan Bardash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