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왈, 요건 몰랐지?

Week 2 저 아직 살아있어요

by 유녕

토요일에 글을 썼어야 했는데, 쉰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의무를 지나쳤다. 일요일에 6시에 눈이 떠지면 어쩌자는 건지... 억지로 2시간을 더 자고 이불킥 하고 서둘러 글을 써본다. 내 월요일 시간표는 사악하다. 이른 8시 반부터 늦은 7시 반까지 학교에서 생활한다. 해부학 & 생리학 강의가 2시간, 어르신 병리학 2시간 , 실습 이론 2시간, 실습 3시간인데, 세 번째 수업 시간부터는 뇌의 존재가 의심될 만큼 '멍~'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결론은 20대에만 잠깐 마셔봤던 고 카페인 음료를 마셔서라도 뇌신경을 흥분시켜 주기로 했다. 미안하다, 몸아.


아무래도 해부학은 말 그대로 암기 과목이라 동기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나만 빼고. 내 기억력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암울한 얼굴로 타대학에서 이미 그 강의를 들었다. 심지어 6개월간... 고생한 보람이 있게 거의 잊지 않고 있어, 앞자리에 앉아서 강사님 놀라게 해 드리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수업이... 재미와 지루, 그 사이에 있다. 어르신 병리학도 해부학과 생리학의 연장이지만 중간중간 새로운 정보를 듣는 재미가 있다. 공부할수록 노화의 세계는 다크 하다. 알고 대비하는 자세로 앞으로 20년 사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사는 게 되다.


실습 이론은 타대학에서 공부하긴 했지만 이번 강사가 훨씬 잘 가르치기에 수업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들으면서 작년 실습에서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아찔하다.(죄송해요, 어르신들) 이번 실습에서는 조금 더 자신 있게 환우분의 손과 눈과 귀가 되어드릴 준비가 드. 디. 어. 됐다. 실습 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실습 현장이 요양병원인 건 안다. 쪼매 기다리소, 어르신들~~~


실습 시간에는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뇌에 마비가 왔었다. 아무래도 수업 전 먹은, 저녁 도시락이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그래서 내일 저녁 도시락은 없다. 강력한 프로틴 바를 하나 깨물어 먹기로 한다. 먹는 얘기가 나왔으니 한 주를 보내면서 느낀 것이 굳이 한 주간 먹을 도시락을 미리 만들어서 냉동할 일은... 앞으로 없다. 수업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는 날이 다반사라 집에 곧장 가서 먹으면 된다. 평일에 에너지가 남는 한에서 최소 3시간 이상은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식사 준비가 여유롭다. 내가 지금 천국에 있는 건지, 무릉도원에 있는 건지. 여보게, 여기가 어디오.


한 주를 보내고, 제일 어려웠던 것은 아직 적응이 안 된 나의 신체 리듬이지만, 제일 먼저 적응하는 게 자고 깨는 것이라 앞으로 한 주는 현타없이 매끈하게 하루하루 관문을 통과할 게다. 미안하다 몸아, 주인이 무식해서. 지나왔기에 하는 생각이겠지만 2년 전 진작에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면 무난히 졸업해서 이미 간호사가 돼있을 텐... 하... 이미 벌어진 일... 조금 돌아서 가는 인생이라고 위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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