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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07. 2021

오늘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Week 10


수지맞게도 정말 반가운 초콜렛 세 개를 선물 받았어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 여고생 덕에 입이 호강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다고 느끼는 게, 크든 작든, 이웃이나 지인, 친구에게 나누는 음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에 살 땐, 숨 쉬듯 당연한 것들이 캐나다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이기에 무척 소중한 문화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배우자가 가르치는 이 여고생에게 저는 무엇을 답례할까요.


지난 2주간 저와의 약속을 깨버렸어요. 토요일만큼은 하루 쉬자 했거늘, 어떤 주는 시험이 2개, 어떤 주는 1개, 결국은 반나절만 쉬고 다시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달달달 외워야 했어요. 물론, 다음 주 월요일에도 시험 1개가, 다다음주에도 시험과 과제가 줄줄이 예약되어 있어요. 시험이 워낙 자주 있다 보니 오히려 없는 게 불안해요. 이렇게 1년 반을 버티면 됩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2년제인데 방학마저 없애서 졸업을 6개월 일찍 합니다. 6개월 일찍 간호사가 된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일 텐데요, 나름 숨 쉴 틈 없는 빡셈에 빡돌...ㅇ...


토요일인데, 이른 6시에 눈이 떠졌어요. 당뇨병에 관한 작문 과제와 한국 문화에 대한 과제를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말이지요. 마음은 쉬고 싶은데... 결국 자신을 설득하고, 오전 중에 초고 작성을 마친 상태입니다. 어쨌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기에 기분은 상큼합니다. 발표일에 제 파트를 발라버려야지 하는 생각뿐입니다. 다 주거써! ㅋㅋㅋㅋㅋ 네, 아빠를 닮아서 허풍이 좀 셉니다. 


  

요 친구는 제 고양이가 아닙니다. 이웃집 고양이인데, 본집에서 밥을 안 주는지 밥을 구걸하러 와요. 주인의 손길이 무척 부족해 보여요. 몸 곳곳에 털이 빠지고 피부질환이 의심되는데, 주인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습니다. 귀여워서 입양해놓고 방치하는 주인들도 많던데, 이 친구는 그 경우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하루에 2번을 찾아와 문을 긁는데, 이젠 '나비'라고 이름을 붙여줬어요. 보이시나요 제 약간의 배려가? 이 친구 과체중이라 사진에서 처럼 받침대를 두고 식사하실 때 불편하지 않으시게 높이를 맞춰드렸어요ㅋㅋㅋㅋ 넌 집에 안 가니?ㅋㅋㅋㅋㅋ


오늘 저녁에는 사워도우 브레드를 구워요. 이 빵은 만드는데 보통 하루가 걸려서 마음먹고 부지런을 떨어야 해요. 그래서 여름 이후로 억지로 망각하고 있었어요. 도시락 먹는 재미로 학교에 가는 저라, 맛있는 샌드위치를 도시락으로 싸갈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어요. 벌써 입에 침이 고이네요. 사는 낙이 별 건가요, 도시락 한 끼면 됐지요 뭐. 전 이제 지난주까지 문 앞에 진열해뒀던 호박을 씻어, 씨를 바르고, 잘라서 냉동시킬 거랍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와인 한 잔을 마셨더니 나른하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과연 냉동을 시킬까요? 정말? 진짜? 


다음 주에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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