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Apr 10. 2022

빠알람

[안녕]

살면서 지옥을 맛볼 때가 종종 있지 않나요? 전 지난 금요일, 딱 그랬습니다. 시험 범위를 알려주시고, 수업 시간에 날리듯 흘리듯 한 내용이 시험 문제에 고스란히 나와있었고요, 시험 범위 내에서도 별로 중요하다고 강조 안 하시고 지나간 문제들이 보란 듯이 나와 있었거든요. 전자의 예로는 ABC가 있었고요, 후자의 예는 피부와 털의 노화과정 특징을 나열하라는 것이었어요. ABC는 어차피 환우의 생사와 연결되는 것이라 잘 때려 맞췄습니다: Airway. breathing, circulation. 문제는 피부와 털인데 말이지요. 쓰기는 많이 써놓고 왔는데 나머지 운은 운명에 맡겨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시험이 앞으로 3개가 더 남았습니다. 수요일에 볼 과목들은 나름 쉽다고 생각하는 과목인데, 월요일은 약리학입니다. 강사 스탈이 쉽게 점수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약리학 시험을 보면 흰머리가 대여섯 개씩 더 생기는 느낌이랄까요. 


금요일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타격을 입고, 저녁 9시까지 넋 놓고 쉬었습니다. 두통이 좀 심해 그냥 가만히 시체놀이를 했어요. 토요일은 작정하고 반나절 놀자고 생각한 터라, 필리핀인 친구 두 명과 같이 동네의 실내 5일장에 다녀왔습니다. Farmer's market이라고 잘 알려져 있지요. 외국의 5일장은 한국과 달라서 가격이 불친절합니다. 본인들이 재배하거나 만든 것들을 팔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면 잘 안 가게 되지요. 그래도 구경하는 재미는 가끔 있습니다. 전 일부러 안 간지가 4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친구들의 성화에 같이 가줬습니다. 참말 재미있었던 것이 이 두 친구들은, 구경 보다도 한국 음식 코너인 만수네 비비큐에 마음이 가 있더라고요. 각종 튀김을 $14로 팔고 있는데, 거기에 불고기도 포함돼 인기가 무척 좋아 줄 서서 기다렸습니다. 


튀김 중 무척 생소했던 것이 밥을 튀김 물에 묻혀 튀긴 rice patty인데요, 정확히 무언지 몰라 물어보니, 찬밥을 튀긴 거라고ㅋㅋㅋ 흡사 누룽지를 튀겼겠거니 생각하지면 안됩니다. 말 그대로 찬밥을 햄버거 패티 모양으로 만들어 튀김 물을 입혀 튀긴 거라 안에 온전한 밥이 있습니다.(뭐지?????) 제가 보기에는 맛보다는 식감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거 같아요. 설명이 길지요? 네, 전 안 먹었거든요. 혹시 베지테리언이신가요? 그럼 저처럼 식사 시간에 먼저 50% 정도 요기를 하고 나가시는 게 신의 한 수입니다. 의외로 같이 가는 곳에 먹을 것이 없을 수 있거든요. 뼈저리게 배워 익힌 생존방법입니다.(나중에 일본 여행 썰을 풀기로 하지요.)


필리핀도 한국처럼 길거리에 각종 튀김 음식을 많이 팝니다. 생전 보도 못한 식재료를 이용하는데요, 가끔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들으면 전 마닐라에 가서 매일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도 외식할 때 쉽지 않았는데, 마닐라도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ㅋㅋㅋ 친구들과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국시를 보고 나면 2-3주 꼭 놀러 갔다 오려고 벼루고 있습니다. 


온몸에 5일장에 파는 온갖 음식 냄새를 풍기며 다음 저희가 행한 곳은 15분 거리의 항구였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 호르몬 박, 뜬금없이 '내 인생에 필리핀 친구들을 만난 건 최고의 순간이었어.'라고 말하게 됩니다. 분명 손꼽는 캐나다인 친구도 있지만 이 정도의 끈끈함은 한국에 두고 온 절친들과 맞먹는 너낌? 한국을 떠나와 친구 같은 친구를 만난 첫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전우애까지 콤보입니다. 아무쪼록 감동의 토요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사실 요리를 해서 글을 올려야 하지만, 시험의 압박이 있어(그와중에 글을 쓰고 있고요ㅋ) 조금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오호! 그나저나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부활절 휴일입니다. 시험이 4개라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다음 주에는 <부엌에서 지구 한 바퀴 시즌2> 편에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 주 달려보아요. 고고.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주도 부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