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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un 06. 2022

저 살아 있어요.

2학기를 보내며

그간 살아있는지 궁금하셨을 분들께 고합니다. 지난 2주간은 꾀를 부릴 수 없을 정도로 기말고사에 올인을 해야 했기에 따로 글을 쓸 힐링 타임이 없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마지막 시험일에는 모두의 스트레스 지수가 지금의 기름값처럼 최고점을 찍었을 겁니다. 그래서... 금요일은 생각 없이 놀았습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최근 무섭게 친해진 친구와 kfc 비건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습니다. 마요네즈가 셔츠에 묻어도, 입가에 칠해져도, 그냥 다 좋았습니다. '너는 묻어라 나는 시험 끝났다, 해방이다'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계획이 없던 터라,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에어컨이 나오는 몰에 어느새 도착했고요. 몰에서는 H&M과 다른 옷 상점에 들러 이것도 입어보고, 저것도 들쳐봤는데요, 전 딱히 행운이 얻어걸리지 않아 득템은 없었습니다.


토요일 점심에 금요일에 함께한 친구인, JJ와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마지막은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고요. 참고로 JJ 역시 필리핀 출신 친구입니다. 캐나다에 온 지 6년이 됐고요. 저와는 거의 정반대의 외향적인 친구입니다. 전 가끔 사람과 있으면 진이 빠져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친구는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가 채워지는 형이지요. 참 재밌어요, 사회화라는 것이. JJ는 집에서 계란을 삶아서 고추장에 찍어먹는 게 요리실력의 전부인 친구라, 가능하면 잠깐 불러서 끼니를 챙겨주려고 하는데요, 생각이 유연하고, 배려고 있고, 유머가 있는 친구라 게눈 감추듯 금세 친해졌습니다. 일중독자라 일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하며 캐나다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집에서 요리할 시간도 없고 항상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하네요. 차가 없는 저는 이 친구와 카풀을 하는 대신 세탁기와 건조기가 없는 이 친구는 저의 집에서 세탁을 하며 서로 공생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뭐가 남았을까요? 오늘은 일단 일요일이고요, 요가를 할 참입니다. 앞으로 2주간은 병원에서 실습이 있습니다. 실습이 방학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나마 실습 중에는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배정받은 환자에 대해 리서치를 하고 간호 계획을 짜야하지만요. 더 재밌는 것은 그 간호 계획이 허무맹랑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A 환우분이 왼쪽 엉덩이에 1단계 욕창이 있다는 걸 차트에서 보게 되면 집에서 욕창 관리에 대한 계획을 세워와야 합니다. 간호 계획에는, 2시간마다 환우 자세 바꾸기나, 수분 섭취 장려하기, 보행이 가능하다면 근무 시간 중 최소 한 번이라고 병동을 걸으시도록 돕는다거나, 기회가 된다면 욕창에 대한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기 등등이 있습니다. 제가 허무맹랑할 수 있다고 한 이유는, 간호 진단이라는 것이 모든 환우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공식이 아니라 환우 개인별로 필요하거나 불필요하거나 할 수 있기에 초점을 잘못 맞추면 리서치를 하면서도 소득이 없을 수 있습니다. 아직 배운 것보다 배울 것이 많은 저로서는 딱 삽질하기 좋은 조건이지요. 에혀.


어쨌든 요가를 하고 나선, 말끔히 샤워를 하고요, 내일 도시락을 쌀 참입니다. 맛있지만 아주 귀찮은 일과이지요. 고로 간편한 브리토 랩을 싸갈 예정이고요. day 근무인 앞으로 일주일은 오전 5시 기상입니다. 온몸의 세포가 거부하는 시간이고요, 오늘 취침 시간은 오후 9시가 될 예정입니다. 자야 합니다. 꼭. 제발, 일찍 처자세요, 나님아. 한 주만 버티면 다음 한 주는 evening 근무입니다. 오후 3시가 출근 인 셈인데요, 와... 벌써 기다려져요.  


제가 말을 했던가요? 이번 실습에서는 침상 교체나, 환우분 positioning, bed bath 외에도 할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났습니다. vital sign인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 통증을 재고, 요도 카테터 삽입, 관개, 교체가 가능해졌고요, 상처 관개와 드레싱이 추가로 허용됩니다. 이걸 써놓고 보니, 자기 전 적어도 요도 카테터와 상처 드레싱을 복습해야겠어요. 멸균 과정으로 이뤄지는 기술이라 긴장이 좀 되네요. 하지만... 강사님께서 저를 지켜보시고 계실 것이기에 제가 놓치는 부분을 교정해 주실 것입니다. 랩에서 연습을 하고 또 하지만 마네퀸으로 하는 것과 실제 사람에 하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여성 환우분의 요도를 손쉽게 찾아 무사히 배운 대로 실습해보는 기회를 꼭 만들어 보겠습니다. 과연 제가 배정받을 환우분은 요도 카테터를 차고 계실까요? 결과는 다음 주에ㅋㅋㅋ


벌써 3학기 시간표가 공지됐고요, 랩 동기들이 재배치되었습니다. B 조였던 저는 이번 학기에 A조로 바뀌었고요, 의도는 하나이지요. 새로운 팀원들과 (서로 죽이지 말고) 일해 보라는. 3학기는 무척 짧습니다.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쉽게 커리큘럼을 짜 놨네요. 차라리 그 시간에 방학을 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혼자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새 학기는 정신간호학, 정맥 절개, prenatal, 정맥 절개 랩, 지역사회 리더십 교육이 시간표에 있네요. 드디어 정맥혈을 뽑아요. 우헤헤헤헤헤. 니들 다 주그써. 아주 재밌는 3학기 기대해 봅니다. 


3학기의 실습이 끝나면 드디어 저는 여행을 갑니다. 해외는 아니고요, 제가 좋아라 하는 토론토에 가서 일주일간 에어 비앤비에 방 잡고 놀 생각입니다. 실습이 끝나고 간다는 것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간다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전 공부할 것이 없...다는? 놀아야 공부할 원동력이 생기니까요, 실컷 놀겠습니다. 간호의 '기역'자도 보지 아니하겠습니다. 가는 김에 제가 1년 뒤에 이사를 가게 될 지역도 탐방을 좀 해보려고요. 비행기표를 보면 무척 좋은데 말이지요, 앞으로 3개월이 참 벌써 고되네요. 다들 여름휴가 바라보며 하루 8시간 버텨봅시다. 전, 이제 요가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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