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요
한바탕 눈을 쓸고
집 안에 들어와
찻물을 올립니다
펄펄 끓는 물은
꽁꽁 언 손을
이윽고 녹여줍니다
은은히 퍼지는
자스민 향은
무뎌진 마음을
살며시 열어주고요
이렇게 오랜만에
무방비가 되는 날엔
차가 우려질 때까지만
당신을 그리워하기로 해요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이어폰을 끼고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오곤 했습니다
주머니에 넣은 손과
유독 큰 키는
스치는 많은 여인의
눈길을 훔치곤 했지요
엉뚱한 그 사람
아르바이트로 번 돈에
형에게 꾼 돈까지 보태
졸업 선물로 사준
만년필은
평생을 기억하라는
그의 저주인지
아님 축복인지
아직 헷갈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수요일 밤
향긋한 모리화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보름달도 올려다보고
졸고 있는 고양이도
이따금 바라보면서
차가 식을 때까지만
당신을 추억하기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