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미술관
TV에서 한창 야구경기 생중계가 방영되고 있었고 다음 주에 대전에서 원정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한 번도 야구 직관을 간 기억이 없다.
“날씨도 점점 선선해지고 대전까지 기차로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면 닿는 거리인데 이번 기회에 나도 원정경기 한 번 다녀와볼까?” 하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대전으로 도착하게 되면 경기장 주변 맛집을 탐방하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소리에 맞춰 응원을 한 다음, 근처 노포에서 뒤풀이를 할 예정이었다. 머릿속에 그린 나의 예술작품은 즐거움으로 가득했고, 지친 삶을 조금은 위로해 줄 것만 같았다.
상상은 현실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의 작품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지만, 대전에 조금 더 머무르며 정서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 2005년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이 폐관하여 대전광역시로 소장품이 인계받으며, 2007년 5월 개관한 이응노미술관은 파리의 고암 아카데미와 연계하여 다양한 연구와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고암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술관으로, 예술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으로, 예술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의 공간으로.
작품 수(壽)는 문자추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제 미술관 건축물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이응노의 문자추상은 서체의 부드러운 흐름에서 벗어나 건축적으로 단단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문자추상 양식을 심화시켰는데, 한국미술 1세대로 한국적 추상미술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고암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유행하던 사조를 보며 자유로운 조형정신에 자극을 받아 동서양 미술의 경계를 넘어 '문차추상, '군상' 등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이러한 고암의 작품세계가 투영된 미술관은 천천히 둘러보면 작품의 요소들을 상징화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응노미술관의 파사드는 넓은 녹지공간과 광장으로 이어지며, 대지를 기준으로 건축물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건축물의 시선을 사로잡는 형태는 지붕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지붕을 받쳐주는 갈비뼈 모양의 한옥의 서까래 혹은 한옥의 창살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것을 지탱하는 ’ 지붕격자-보’의 직사각형 단면들은 마치 옆으로 세워놓은 것 같은 형태이다.
건축물의 지붕은 비를 막거나 햇빛을 가리는 용도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보와 보 사이의 간격으로 햇빛이 바로 투과하지 못하고 여과는 효과를 연출한다. 형태적으로 건물을 구분 짓고 있지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여과되는 그림자의 모습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전통건축 요소인 담은 공간 분할의 영역에 있어 담 안쪽의 공간은 서양의 실내공간과 같은 개념으로, 실내와 실외 공간을 구획 짓는 벽의 역할에 가깝다. 옛 주거공간 행랑채의 담(墻)은 마당을 위한 것이고, 사랑 마당과 안마당 사이의 담(墻)은 남녀구별에 의한 공간분화(空間分化)를 이루도록 나눠졌다, 대지 주위를 둘러서 담(墻)을 쌓고 일단 외부 공간과 다른 성격의 공간을 형성한 후 다시 그 속에서 공담(空墻)을 쌓아 그 두 공간을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담(墻)은 공간과 공간이 분할된 채 독립성을 유지시키지 않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우리의 자연주의 사상에 보다 접근하고 있는데, 담(墻)에 살창이나 교창을 설치하여 마당과 마당사이를 이루는 공간이 서로 관입되어 살창으로 담(墻)을 넘어 자연을 바라보게 하는데 이는 인공공간이 자연 공간으로의 침투를 의미한다. 이런 개념들을 재해석하여 이응노 미술관의 동서를 관통하는 긴 벽은 지붕 격자보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내부 전시실을 남북으로 구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벽으로 단층인 남측 전시실은 천장고가 높고 밝지만, 중층 구조인 북쪽 전시실은 천장고가 낮고 어둡다.
이응노 미술관은 큰 규모의 건축물은 아니다. 지하 1층은 수장고, 4개의 전시실로 나뉜 1층과 별관, 그리고 야외전시장이다. 하지만 자연채광과 바깥 자연을 최대한 실내로 끌어들여 실내에서 크게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전시로 연계되는 긴 복도의 외벽 유리 너머로 보이는 연못은 산책을 하는 것처럼 또 다른 정취를 즐거움과 흥미를 유발한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반복적인 선이 ‘열린 지붕’을 이루고 주변의 대나무가우거져 마치 ‘정원 속 연못’ 같다. 이러한 요소는 미술관 밖에서 마찬가지로 잔디밭 산책로를 따라 문턱이나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담(墻)은 위계성을 통해 건축공간이 자연 공간으로도 확대되게도 하는데, 담(墻) 안쪽의 대지가 담(墻) 밖의 대지보다 높을 경우 외부에서는 담(墻) 안이 보이지 않으나 담(墻) 안에서는 쉽게 자연 공간을 감상하고 동화될 수 있게 한다. 이와 반대로 담이 외부에서는 방어적으로 느껴지지만 담 안의 대지(大地)가 담 안의 대지보다 높을 경우 손쉽게 자연적인 공간과 유동할 수 있다. 이렇게 담에 의해 담 안의 공간이 담 밖까지 연장된다. 외부 공간을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여 사람은 자연 손에 한 부분임을 드러내며, 지형을 능란하게 이용한 지혜가 엿보인다.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은 작품 속 드로잉적적 요소를 구조로의 전환하여 건축적으로 재해석했다. 해체에서 다시 조합하여 건축으로 새롭게 탄생한 작품은 고암의 예술세계를 상징과 더불어 미술관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예술에 대한 고찰을 시사한다.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내용 참고 | 이응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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