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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zakka Nov 14. 2020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철산 주공아파트단지



00 화려한 곳에서 화려하지 않은 것


우리 동네 옆 안양천은 매년 봄이면 화려한 벚꽃들로 가득 찬 풍경을 수놓는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분이 붕붕- 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 큰 도로를 빠져 광명 시내의 작은 도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높은 용적률을 뽐내는 재건축 단지와 공장들 부지 사이로 작고 아담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띈다. 조금 낯선 풍경을 더 가까이 마주 보면 갈라진 페인트와 벽돌 사이로 주공아파트 로고가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위치한 이 단지는 현재 거의 대부분의 단지들이 재건축이 진행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장소이다. 철산 주공 8,9단지는 꽤나 잘 알려져 있는데 8단지에는 2층짜리 동이 있으며, 1층 가구는 지하방을 가지고 있고, 2층 가구는 다락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붕이 삼각형이고 1,2층 출입문이 분리되어 있고 벚나무와 겸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건물 특유의 건축물의 생김새까지 더해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4월 하순 즈음이었을까? 꽃놀이를 가기에는 이미 벚꽃들은 흩날리며 떨어진 시기였다. 하지만 이곳은 유독 다른 곳과는 다르게 커다란 나뭇가지에 굵고 풍성한 분홍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단지 초입을 들어서며 나는 신기한 광경을 많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대규모 단지에 사람의 온기는 많이 남지 않은 집들이 대부분이며, 그 온기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는 것. 각종 소품과 조명, 반사판 등 다양한 장비들을 대동하며 촬영용 모델까지 동반한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사진 동호회로 보이는 모임과 겹벚꽃을 배경으로 삼아 추억을 남기는 연인들과 친구들의 모습들까지. 새삼 카메라 하나 어깨에 짊어지고 혼자 온 내 모습이 순간 머쓱하면서 이제는 SNS로 많이 알려진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단지 안에는 커다란 초록색 나무들과 벚나무들이 담장을 경계로는 아파트의 수명만큼이나 오래된 벚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땅값이 끝없이 치솟아 오르는 서울 근교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저층 아파트와 그 헤진 페인트와 벽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동 사이로 자리 잡은 무성한 잡초들과 풀들은 작은 정원의 모습을 나타내고, 그 사이사이 자리 잡은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야생초의 모습들의 조화가 보기 좋더라.



무엇보다도 이러한 조경들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는 단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동마다 제각각 다르게 설계되는 차별화된 모습이 곧,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과 그들의 삶을 투영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일반 단독 주택처럼 바로 진입 가능하게 현관문이 나있는 집과, 계단을 통해 양쪽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는 등 다양한 구조와 각 가구마다 처마를 둠으로써 공통주택의 모습을 보여주고 하는 건물의 형태가 재미있었다. 또한 거친 콘크리트 구조의 뼈대에 기와지붕의 모습이 주는 독특한 매력. 청색과 탁한 주홍색의 기와의 색깔은 무채색의 거친 느낌에 온기를 더해준다. 수도의 배관 난방 등 주택의 시스템은 세월이 흘러 그 무게들을 견디지는 못했지만 단지의 설계와 구조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이 주는 느낌은 세월을 거슬러도 여전히 '멋스럽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요즘의 아파트는 최신의 기술과 고급스러운 재료들을 이용하여 웅장하고 멋있는 건물들이 지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똑같은 모습의 말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하듯 지어지는 요즘 집들과는 조금은 다른 비정형적인 모습들. 그리고 옛날의 향수가 느껴지는 온기라는 것이 이 단지가 주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01 새로운 기억으로 떠오를 장소


인터넷에서의 철산주공 단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봄의 추억과 흔적을 선물했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 장소를 찾았다. 벚꽃 명소, 독특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출사(出寫) 장소, 어떤 이에겐 잠깐 스쳐 지나간 동네로.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그들은 이 장소가 주는 오래된 '멋'이라는 향수를 공유했다.


내년이면 겹벚꽃이 피기도 전에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될 이 장소를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해 더 의미 있는 장소로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러했다. KTX의 개통과 교통의 접근성으로 입지를 다진 광명의 집값은 계속 올랐고, 이미 오를 때로 오른 주변의 동네만큼 이 단지 역시 그러했다. 이제는 살 수 없는 오래된 세월에 무너져가는 이 집을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이 단지가 어서 빨리 철거를 들어가 없어지길 바랄 것이다. 또 이 장소를 새로운 단지를 조성해 회사의 이익을 가져다줄 건설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용적률을 자랑하는 빽빽한 집들을 지어 벌집구조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사적 소유권과 회사의 이익 추구는 당연한 현상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생각이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도 알고 집요하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단지를 돌아다니며 느꼈던 생각과 사진으로 담은 이 공간의 모습들을 다시 천천히 보면서, 이 장소에 새롭게 조성될 단지에 그 집에 살아가게 될 사람들의 모습들을 지금 이 단지가 가지고 있는 온기를 조금은 반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조금은 더 조화롭고 다양한 건축적 시도를 하기를 바람을 가지면서.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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