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흥동성당
대전 원도심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현 근대건축박물관)을 기준으로 축이 형성됐는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대종로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도시의 축이 형성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종로에는 근현대사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갖춘 건축물들이 위치하게 되는데 그중 대흥동 성당은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대전 대흥동 성당의 역사는 1919년 이종순 신부가 대전 지역 신자들을 위해 대전군 남면 방축리(현 대전광역시 중구 목동) 10칸짜리 한옥성당에서 시작된다. 이후 1945년 대흥동으로 이전해 전쟁 중 폭격을 맞아 소실되었고 1952년 임시 성당을 건축했다. 이후 1960년 기공식을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1960년대 당시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교회건축은 모더니즘의 흐름이 강했다. 건축가 이희태의 혜화동성당(1960), 나상진의 후암동성당(1964)과 같이 콘크리트 구조를 드러내는 한편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하고 내부는 기둥이 없는 장방형 공간 등으로 구성했다. 이러한 특징은 1962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교회 변화와 쇄신에 잘 부합하며 교회건축의 현대적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다양한 교회건축의 현대적 변화 시도가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건축가 이창근의 대흥동성당 역시 이러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는데 건물을 바라본 나는 커다란 외관 모습에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듯한 모습의 파사드와 높이 49.8m의 종탑은 수직으로 뻗친 스테인글라스의 뚜렷한 선으로 웅장한 분위기가 더욱 강조된다. 아마 후면의 센텀시티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건물은 분명 더 거대하게 느껴졌을 거다.
방문한 시간에 매일미사가 진행되고 있어 괜히 방해가 될까 싶어 돌아 나가려는 순간 신도님의 손짓으로 내부로 들어가게 됐다. 다음 일정이 있어 원래 사진만 몰래 찍고 다시 나오려 했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고 결국 마침예식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야 나오게 됐다. 사실 나도 천주교 신자라 어쭙잖은 핑계란 이유로 양심을 이기지 못해 그랬던 걸지도.
본론으로 돌아와 내부의 모습은 기둥을 따로 두지 않고 철근 콘크리트 구조체를 규칙적으로 노출 공간을 구성한 방식을 보이는데 1960년대 초기만 하더라도 상당한 기술이 요구됐던 시기라 그 가치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당시 설계와 시공 모두 이러한 건축 시도는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다시 외부로 나와 철판 정면의 캔틸레버 캐노피의 모습은 수직으로 뻗은 정면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독특한 디자인 구성을 띄기도 한다. 또한 톱날형 창문을 돌출시켜 위에서 바라봤을 때 재미있는 평면상의 변화, 후면의 시멘트 벽돌에 적벽돌로 마감된 구성을 보여준다.
대흥동성당은 대종로의 축이자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 보금장소로써 그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모더니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그 가치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되어 등록문화재 643호로 등록되었다. 해방과 전쟁 이후 사회・정치・경제적 격변기 속 교우와 사제가 함께 고민한 교회건축의 모습 그리고 현대 교회건축 변화의 근간이 된 예로 계속 남아주길 바란다.
글 | yoonzakka
사진 | yoonzakka
내용 참고 | 대전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