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중독일지 3 - 무지개별로 간 고양이가 생각났다

by 윤훤

저는 휴대폰 중독자입니다.

하루 7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휴대폰 화면 속에 갇혀 지낸

6 년의 시간과 휴대폰을 끄고 난 뒤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2025년 8월 5일 오전과 오후 사이


몇 달 전 건강검진을 했다. 피검사 재검을 오라고 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11시가 가까워오자 마음이 조급해져 후다닥 씻었다.


아차 수건이 없다. 몽땅 세탁기로 돌려버렸다.

이럴 때는 단발로 자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꼭 짜고 널어놓은 젖은 수건으로

대강 몸을 닦고 선풍기 앞으로 갔다.

머리를 80%쯤 말리고 옷을 입고 선크림을 바르며 안대를 살까?

가방은 뭐 매지? 화장할까? 생각했다.


나는 화장 전문가다.

잘 차려입고 잘 꾸미면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안다.

그게 친절인지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을 자주 했다.

화장 가면의 자신감이 친절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화장을 안 하면 소극적으로 변한다.


'아니다 선크림만 바르자' 다짐하고

가방도 들지 말자 생각했다.

나가려고 생각해 보니 책, 손선풍기, 양산을 넣어야 해서

옷에 어울리는 흰색 가방을 다시 골랐다.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 섰는데 부은 눈, 다크서클, 얼굴 잡티가 눈에 들어왔다.

꼭 실컷 운 사람의 얼굴 같기도 했다.


작년에 무지개 별로 간 내 고양이들이 생각났다.


그때도 오늘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폰없이 모자를 쓰고 크록스를 신고

폰 없이 밖으로 나갔다.

주변의 소음과 바뀐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 도로를 정비한 것 같았다.


평소의 내 루틴대로 라면 이어폰을 끼고

최신 트렌드의 음악을 재생하고 폰 화면을 보면서

아이스 라테를 들었을 것이다.

음악과 커피가 주는 두근거림과 도파민은

잠깐의 열정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난 핸드폰도 중독이지만 특히나 이어폰 중독이다.

이어폰을 안 끼고 외출한 날이 오늘 말고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엊그제도 요즘 핫한 올데이프로젝트의 노래를

반복 재생했던 기억이 있다.

전철에 앉으면 인강이나 요즘 성공한 유튜버들의 강연을 듣곤 했었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이사 올 때 보았던

카페 겸 독립출판사가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여러 카페를 지나치고

커피를 사지 않은 것이 생각나 아무 카페나 들어간 적이 있다.


사장님은 커피 사러 온 나를 약간 생소하게 보시더니

승무원이냐고 물어보셨다.

아마 내가 들고 있던 네모나고 큰 검은 가방 때문 인 것 같았다.

커피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50여 권쯤 되는

책과 그림, 낯선 기계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은 벽을 가리키며 "제가 직접 그린 거예요"라고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거셨다.


사실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같은 크기의

작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쓰신 책이라고 하셨다.

그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4년 후

오늘 이곳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종종 이곳을 지날 때 출판사랑 같이

카페 하는 곳이라는 생각 정도는 했다.


지하철역에 가까워 오자 얼마 전 새로 생긴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들어가 아이스 카페라테를 주문했는데

이곳이 애견 동반 카페임을 알게 되었다.

불편하지 않은 동물 냄새와 강아지 간식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밖에서 볼 때는 작은 빵집 겸 카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흰색 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손님도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한번 내 고양이가 생각났다.


사장님과 커피를 주고받으며 눈을 마주쳤는데

퉁퉁 부은 눈 때문인지 살짝 흠칫하시는 게 느껴졌다.

근처에 있는 약국으로 가 4500원을 주고

안대 3개를 샀다.


전철역 화장실에서 안대를 찼는데

아빠가 자주 보던 태조왕건 드라마 속 궁예가 생각났다.

안대를 쓰니 시야가 확실히 좁아졌다.

한쪽 눈을 윙크하고 있으면 반쪽 시야는 밝아지는데 계속 윙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쪽눈은 하얀 거즈의 뿌연 배경으로,

한쪽 눈은 좁아진 시야로 5호선 입구로 갔다.


내가 사는 곳은 2호선과 5호선이 있다.

평소에 폰을 들고 있을 때는 전철 입구에 들어설 때 가는

목적지를 재검색하여 둘 중 빠른 호선에 몸을 싣곤 했다.

고작 3분에서 5분 정도의 절약인데 그게 이득인 느낌이 들었다.

빠른 하차나 빠른 환승 구간도 체크하곤 했다.


폰이 없어 그걸 할 수 없으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가야 할 곳은 시청역이다.


집에서 네이버로 검색했을 때 5호선 영등포 구청역에서

환승하라는 기억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5호선 앞에 있었는데

2호선이 먼저 와서 뒤로 넘어가 2호선을 탔다.

신도림 역에서 내렸는데 시청역 방향이 생각나지 않았다.

벽에 붙어 있는 지하철 노선도 앞으로 가서

다시 확인한 후 영등포 방향으로 전철을 탔다.

그렇게 많은 시간 전철을 탔는데도

노선도가 기억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지금 몇 시지? 잠깐 궁금해하다가 챙겨 온 책을 꺼냈다.

책을 읽으면서 손목시계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교성 없는 소립자들_전경린


이 책을 챙겨 나온 이유는 작고 얇아서인 이유도 있지만 책을 구매한 이유가

인스타에서 본 문구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뛰어내려야 할 벼랑이 있다. "


이 책에 나오는 문장인지 그 사람이 생각해서

쓴 문장인지 모르겠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었다.

내가 구매한 많은 것들은

인스타와 유튜브의 영향이 있다.


시청역에서 내려 양산을 쓰고 건진센터로 가는데

일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잠시 사람들이 뭘 입고 있는지 살펴봤다.

흰색 회색 남색들 사이로

아이스블루진이 몇 개 들어왔다.


걷는 도중 아이스 블루진을 한국어로 적합하게 표현할 문장이 뭐지 생각했다.

차가운 느낌의 옅은 하늘색 청바지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건진센터에서 접수를 했는데 문득 핸드폰이 필요하면 어쩌지 싶었다. 접수를 하고 데스크로 갔는데 금식하셨냐고 물어보았다.


금식은 했는데 아이스커피는 마셨어요라고 하니

콜레스테롤 재검이라 커피 드셨으면

나중에 하시는 게 좋다고 하셨다.

아차 싶었다. 피검사 재검을 어제도 생각했기 때문에 금식은 했는데

아침에 습관처럼 믹스커피를 먹고 아이스 블랙커피도 한 모금 먹고 나오는 길에

아이스 카페라테도 먹었다.


'하.... 난 왜 이러지?'


다시 시청역 8번 출구 쪽으로 걷다가 나온 김에 밥이나 먹자 싶어

식당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전철역으로 들어갔다.

다시 한번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신도림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의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 숙명여자대학교가 여기에 있었구나 '

앞자리에 앉은 다섯 명은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 나만 세상으로부터 오프라인이구나.... '

한 명은 손을 폰에 쥐고 잠이 들었다.

꼰 다리, 약간 휘어진 목, 휴대폰을 감싸 쥔 왼손

평소 나의 태도와 너무 닮았다.


신도림 역에서 환승을 하려고 하다가 영화를 볼까? 잠시 생각했다.

영화예매를 가서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어쩌지?

통신사 할인으로 결제하면 더 싼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신도림 역에 있는 영화관이 CGV 인지 롯데시네마 인지 생각이 안 났다.

신도림 역 밖으로 나가려다가 쨍한 햇빛이 무서워 다시 까치산역 방향으로 들어갔다.


나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데다가 길치이다.


전철 안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이어폰 없이 정치채널을

크게 재생하시는 바람에 그 소리를 같이 들었다.

내가 이래서 이어폰을 끼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약간의 짜증으로 시작했는데 역에서 내릴 때까지 그 채널의 소리에 집중했다.

할아버지는 내리지 않으셨다.

아마 신도림역과 까치산역을 반복적으로 오가시며

시원한 전철 에어컨 속에서 쉬시는 것 같았다.


까치산역 다이소에 들를까 하다가 맘에 드는 청소도구가 없을 것 같아

인터넷으로 주문해야지 생각하고 오늘 배달 안 시키면 뭘 먹지 고민했다.


냉장고에 있는 걸 떠올려 보니

삼겹살, 만두, 소시지, 계란, 무말랭이무침....

가는 길에 야채를 사야지 생각하고

야채가게에서 양파 오이 상추 바나나를 골랐는데

사장님께서 카드는 안되고 계좌이체만 된다고 하셨다.


네. 하고 나서 아..... 나 오늘 폰 없지 깨달았다.


야채를 다시 가져다 놓으며 살짝 웃겼다.

작은 마트로 가서 아까 그 가게보다

대략 5000원은 더 비싼 상추 양파 바나나를 골랐다.

집으로 돌아와 선풍기 앞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오늘 나가서 피검사 재검을 하고 청소용품도

사고 밥이라도 먹으려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한숨이 나왔다.


두 시간 동안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잠시 라디오를 켤까? 생각했지만

이 고요가 나쁘지 않았다.


밥을 하고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가

밥통의 칙칙칙 소리를 들으며 사온 야채를 정리했다.

핸드폰 안에 흠뻑 빠져 있을 때도 오늘도 시간은 빨리 가는

느낌이지만 다른 종류의 흐름을 느꼈다.


손목시계와 메모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철 움직이는 소리가 기차 움직이는

소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기차 소리는 여행 가는 느낌을 준다.

전철도 늘 여행 가는 느낌의 소리가 났었구나...


내일 이번 주에 해결해야 할 자료를

미리 만들고 쉬자는 생각을 했다.


분명 휴대폰으로부터는 쉬고 있는데

내 머리를 쉬지 못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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