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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개인삶] 짝사랑에 실패해도 괜찮은 이유

by 유주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열심히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애써 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던 시기도 있었다.


취업 준비 시절, 스터디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는 감정이었다. 노는 것을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인데 의외로 진지하게 임하는 면이 있었다. 내가 못 푸는 문제를 뚝딱뚝딱 풀어내는 모습에서 조금씩 호감이 생겼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가 그만두게 되었다. 서울에 있다가 다시 본가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용기 내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기 직전 서울역사 근처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마주한 그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가정환경의 불우함을, 첫 만남에 털어놓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더러는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에게 공부하면서 도움을 받은 게 많아 저녁을 사주고 싶다고 둘러대며 만났는데, 그런 내게 '너 인기 많겠다,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아서.'라는 말을 던졌다. 나는 태어나 처음 듣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가 던지는 말들은 내 상식 밖에 있었다. 설렐 줄 알았던 첫 만남은 불쾌한 느낌으로 끝이 났다. 그는 나를 왜 만나러 온 거였을까.


그럼에도 그는 내게 자주 연락해서 나를 흔들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게 어장관리라는 것을 느끼고 눈물을 삼켜가며 그를 끊어내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은 너무나 지난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나 정신은 늘 책상 밖에 머물렀다. 좋아하는 마음을 떨치고 공부에 집중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나왔다. 생전 안 마시던 맥주를 이틀에 한 캔 씩 먹더니 급기야 짝으로 사다가 들이켜며 공부했다. 그러다 탈이 나기도 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누르고 어떻게든 잊으려고 노력했을 만큼 나는 사랑에도, 공부에도 진심이었다. 그러나 감정도 공부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가 미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고마웠다. 고맙다고? 그렇다. 정말로 고마웠다. 내가 이전에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내게 이런 경험을 선사해 준 그 친구 덕에 나도 사랑이란 걸 할 줄 아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어장관리라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 당해봤다.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그것 또한 내겐 경험이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이런 경험도 못해보고 공감도 못했을 것이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다 있다. 삶이 어떻게 원하는 대로만 되겠는가. 감정이든 관계든 부딪히고 깨져보아야 견고해질 것이다. 이렇게 좌절도 하고 울어도 보아야 인생이 풍부해지고, 사랑에 성공했을 때의 행복감도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괜찮다. 실패했지만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 친구를 잊는 데는 꼬박 4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책상에서 씨름하며 지내다 보니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임에도 지금도 나는 그 친구에게 고맙다. 그가 꼭 그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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