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딱히 취미랄 게 별로 없는 인간인데, 대외용으로 내보일 수는 없지만 옛날부터 나 혼자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취미가 있었다. 그건 바로 누군가를 흠모하는 일. 대체로 그 대상은 소설가였다. 그들은 내가 꿈꾸지만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행성에 물을 주고 꽃을 피우며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가장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볼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 스물 언저리, 싸이월드에 감수성 폭발하는 오글거리는 일기를 시도때도 없이 업로드하던 시절 '동경'이라는 말과 '흠모'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것 같다.
직업인이 된 뒤로 소설을 읽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동경하던 사람들을 잠시 잊고 지낸 적이 있었다. 살면서 때때로 어떤 계기로 서랍 속에서 그들을 다시 꺼내볼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을 잠시 잊고 지낸 스스로를 타박하고 더 깊은 애정을 다짐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새해마다 신년 계획을 세우고, 한 해를 엉망진창으로 보내고, 연말에 뉘우치고 후회하며 또 다시 같은 다짐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의 동경 리스트들을 지켜 왔다. 가끔씩 그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유 없이 내가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꾸준하고 여전한, 멋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라니!
보통 사람들보다 (보통의 기준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주위와 비교한다면) 음악에 현저히 관심이 적은 편인 나에게도 동경하는 가수가 있다. 밴드 음악도, 팝도, 클래식도 즐기지 않는 내게 음악은 대중가요일 뿐인데 아무튼 그 중에서도 유독 내 심장을 뛰게 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내 세상의 천재들.
리스트가 너무 소소해 읊어보자면 에피톤프로젝트(차세정), 넬(김종완), 빅나티(서동현), AKMU(이찬혁), WOODZ(조승연)가 내 서랍 속 천재 만재 뮤지션 명단들이다. 살다 보면 불가항력적으로 이들의 곡을 들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듣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날들이. 종종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휘발되던 나를 다시 불러 일으키기 위해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도 있다. 과거 어떤 순간의 나를 소환해야 할 때도 마법의 램프를 문지르는 심정으로 이들의 음악을 찾아 문질러 본다.
이들은 이미 오랫동안 나를 키워왔지만 좋은 가사를 쓰는 것이 매일의 숙제가 되어 버린 요즘, 이들의 노래를 부러 다시 틀어놓고 가만히 음미해본다. 작사란 글쓰기가 아니라 음악이라고 했던 말을 다시 실감한다. 곡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라임에 맞는 말들을 짜맞추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 쓰여진 가사들인지 들여다보일 때가 있는데 이들의 가사에는 그런 부자연스러움과 애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말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느낌. 사실은 좋은 가사를 쓰려면 하나하나의 말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녹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게 작사가가 하는 일인데 저들의 음악 앞에서 이런 것들은 무용해진다. 물론 놀라울 만큼 그것들을 충족하고 있긴 하지만서도.
그들의 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자주 생각한다. 정말 우스갯소리이긴 한데 어릴 때 차세정에 한참 미쳐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 '차세정은 곡을 쓰기 위해 이별한대. 이별하기 위해 사랑한대.' 말이 되는 소리겠냐만, 이 루머의 출처가 도대체 어디란 말이겠냐만, 어릴 땐 이 말을 믿었다. 왜냐면 그렇지 않고서는 다른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느낌이었으니까. 한때 나는 김종완의 노래에 등장하는 '당신'이 되어 딱 하루만 살아 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특히 '섬'이란 노래를 들을 때면 요즘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어떤 사랑을 했건, 어떤 세상을 경험했건, 가슴 속에 어떤 단어들을 품고 살건 내가 알 길은 없지만 저마다 품고 있는 말들이, 마음 속의 멜로디가 미치도록 아름다운 형태로 태어난다는 것이 나로서는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그들은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수없이 나를 구원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은 없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빚진 것을 생각하면 나도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나의 말들이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내가 빚진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런 기회를 갖기 위해서라도 나의 언어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생기길 작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