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그림일기]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
어쩐지 인정하기 싫어서 괜히 고집을 피우게 되는 일이 있었더랬다. 가령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은?" 하고 물을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비발디 사계, 베토벤 교향곡"이라고 대답한다거나. "제일 좋아하는 서양 화가는?" "모네, 고흐, 샤갈..." 이런 대답. 그러니까, 누구나 잘 아는 걸 나도 똑같이 좋아한다고 인정하기가 어지간히 싫었던 거다.
그래서 참 피곤한 짓을 많이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작곡가의 잘 알지도 못하는 곡을 찾아 들으며 좋은 구석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이름 생소한 화가의 생소한 작품 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걸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탔다. 책을 살 때도 굳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책은 (아무리 궁금해도) 일부러 집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 다른 신간이 1위로 치고 올라갔을 때쯤 뒤늦게 사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어쭙잖은 고집을 내려놓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참 억울하지만, 나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봐도 고상하게 마이너 취향을 고수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었다. 이름 어려운 작곡가의 음악을 찾아 "열심히 듣다 보면 좋아지려니" 최면을 걸어봐도 공부하는 느낌에 시달렸으니까. 미술사에서 의미 있다는 작품을 아무리 찾아봐도 르누아르가 그린 예쁜 소녀 그림으로 눈이 쏠리는 것도 막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 가뿐한 마음으로 결심했다. 그냥, 내 취향을 인정해주지 뭐. 가물거리긴 하지만 그날의 느낌은 또렷하다. 어느 해던가, 한 스키장 콘도 로비에서 흐르던 음악. 그렇게나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워했던 비발디의 사계. 하지만 귀가 절로 음악을 따라갔다. 하는 수 없지 뭐,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좋은 음악이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듣고 또 듣고, 그러니까 유명해진 거겠지. 그러니까 고전일 테지. 너무 많은 사람이 좋아하다 보니 식상해진 것뿐이지, 음악은 식상하지 않다.
그런저런 비슷한 이유로 어릴 때부터 '명언'이란 걸 별로 안 좋아했다. 특히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거나 하는 말. 너무 흔해져 버린 말이라서 굳이 마음에 새기기엔 낯간지럽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역시나, 식상해질 만큼 많이 하는 말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행복 계좌를 두 배로 불릴 수 있을까? 행복을 나누면 된다.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아침에 깨어나서, 그리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자신에게 물으라. 오늘은 누구를 행복하게 할까? 오늘 나는 누구를 행복하게 했는가?" - 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 중
솔직히 말해 작년에 이 문구를 읽을 때엔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봤던 만화 주제가 가사 같기도 하고(오늘 밤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어떤 기쁨을 줄까♬), 이런저런 수식어를 다 빼고 나면 결국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니까. 하도 많이 들어서 김 빠질 정도로 단순한 말 아닌가.
하지만 이것도 역시 나의 실수인 걸 인정해야 하겠다. 그냥 말로 읊을 때와 행동하고 직접 마음에 품을 때의 차이란 어마어마하다. 소소한 웃음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큰 힘 들이지 않고 한 작은 행동이 상대에겐 어마어마한 행복이 되는 걸 목격하는 순간, 그 행복은 또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다시 내 맘으로 들어온다. 직접 겪고서야 무릎을 탁 쳤다. 그래서 나누라고 하는 거구나. 이렇게나 커지니까.
그래서 당분간은 이 식상한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아볼 작정이다. 너무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건 이 말이 식상해서 그런 게 아니다. '진짜'라서, 체험한 사람이 많은 거다.
https://plain.is/nightpup/558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