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그림일기]
나는 내 민낯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적어도 평일에는 늘 화장한 채 보내는 시간이 민낯인 채 보내는 시간보다 길다. 화장한 내 얼굴에 익숙해지고 나면, 세수한 뒤의 내 모습은 어딘지 영 어색하다. 피부는 누렇고, 눈은 졸려 보이고, 입술색은 희미하고 칙칙하다. 그래서 집에선 거울을 잘 안 본다(엄마 죄송합니다).
내 민낯을 볼 때마다 흠칫 놀라듯 나는 생각보다 나란 사람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가령, '일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보통은 혼자 일할 때,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람과 일할 때의 내 모습을 '일하는 나'로 여긴다. 하지만 일터에서도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새로운 내가 얼굴을 내민다.
그뿐일까. 친구를 만날 때면 친구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내가 번갈아 등장한다. 어른과 만날 때, 아기나 강아지를 볼 때(이 둘에게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의 나는 또 다르다. 가족 중에서도 엄마와 있을 때, 아빠와 있을 때, 오빠와 있을 때의 나는 다르다. 이렇게 혼자서는 깨닫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비추면서 겨우겨우 천천히 알아간다.
그렇게 발견하는 내 모습들이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나라는 한 사람이 될 테지. 그래도 '진짜 나'를 이루는 건 그 모든 걸 무작정 한데 합친 게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꽤나 자주, 혼자가 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쓰고 있던 껍질을 벗게 되니까. 적어도 스스로 가면인 걸 알 수 있는 모습들은 내 참모습이 아닐 거다.
마냥 내게 익숙한 모습만이 나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분명 내가 껍질을 벗고 있는데도 몰랐던 모습을 끌어내는 사람이 있다(껍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으면 껍질이 아니다).
그럴 때 내 모습은 찬찬히 들여다본 적 없던 민낯을 마주한 것처럼 영 낯설다. 하지만 불편하진 않다. 껍질 벗고 편하게 숨 쉬는 중이니까. 그런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면 제일 좋겠다. 누구에게나 편하게 숨 쉬고 웃을 수 있는, 그러면서 외롭지 않을 공간은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