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념무상] 그림일기

by yoong

'행복의 기원' 저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을 이렇게 표현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는 것."


행복이란 게 생각보다 소소한 일들에서 온다는 것쯤 이미 잘 알고 있다. 나란 사람이 워낙 불행해지기도, 행복해지기도 '쉬운' 사람이라서(?) 그런가. 하루에도 불행과 행복 사이를 자주 왔다 갔다 하니, 내가 얼마나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 말을 그리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문득 어제 오늘 이 말을 괜히 곱씹었다. 행복이 대단한 거 아니다, 작고 구체적인 곳에서 느껴지는 게 행복이다. 그건 잘 아는데, 내가 잘 모르는 것, 혹은 잘 하지 못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하는 일은 딱히 함께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해야 하는 일인 건 맞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결과물은 내가 혼자 만드는 게 일이다. (물론 회사에선 나를 사무실로 부르지만) 굳이 사무실에 나올 필요 없이, 인터넷과 전화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란. 그림 그리기, 책이든 뭐든 글씨 읽기, (+귀여운 동물 사진 보고 모으기), 무한정 걷기.... 굳이 누군가와 함께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인 거다. 이런 사소한 일들 속에서 별다른 불편 없이 행복을 느끼지만, 글쎄. 함께. 같이. 그렇게 행복을 쌓아가는 일에는 굉장히 서투르다는 생각을 다시 해봤다.

같은 책을 읽다 잠드는 사람들은 같은 꿈 속에서 만나면 좋겠다. 그러면 책 읽기도 진짜 '함께'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 아이폰 앱 그림.


행복하지 않은 상태. 사실 그 기운이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오늘 새벽엔 매우 매우 매우 사소한 일에서 굉장히 커다란 감정을 느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모르지만, 우리 강아지 이야기다.


해피는 늘 새벽부터 나를 번개처럼 깨워 새벽밥을 먹곤 한다. 보통 깨우는 시각은 오전 5시. 오늘은 어찌 된 영문인지 4시 50분부터 나를 두들겨 깨웠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건가. 그래도 "얘는 살찌면 관절에 무리가 가요" 하고 잔소리하는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뼛속 깊이 새겨진지라, 딱 적정량만 담아줬다. 그리고 한 번 더 리필.. 을 해줬다.


신나게 촵촵촵촵 먹던 해피. 오늘따라, 유난히 밥이 더 아쉬웠나 보다. 그릇 바닥을 뚫을 기세로 흡입했다. 그러고서도 밥그릇 옆을 도무지 떠나질 못하더니, 정말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안돼."


(말없이 눈빛 발사. 참고로 해피 눈은.. 과장 약간 보태면 거의 1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 된다. 새까맣다.)


"안돼."


(눈빛)


"진짜 안돼."


(눈빛)


"엄마한테 가서 더 자."


(....)


그랬더니 드디어, 밥그릇 곁을 떠났다. 처음엔 다시 자러 간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컴컴한 거실 한가운데에, 호올로 앉아 있었다. 나한테 등을 돌린 채, 얼굴은 창문도 아닌, 거실 벽에 붙어 가로놓인 소파를 향한 채.


아, 그때 깨달았다. 쓸쓸함, 슬픔, 좌절감, 이런 감정은 직접 전달보다 간접 전달의 힘이 더 세다는 사실. 커다란 두 눈으로 나를 끙끙대며 바라볼 때보다, 그렇게 힘없이 돌아앉은 뒷모습의 힘은 너무나 강력했다. 너무 미안해서 순간 눈물이 고일만큼, 그렇게 짠하고 가슴 아픈 뒷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넘어가서 밥 한알 더 꺼내 주고 말았다. 사료 한 알에 어찌나 엉덩이 춤을 추며 행복해하던지, 그렇게 버티던 내가 민망할 지경이 되었다. 에휴, 이게 뭐라고.


뒷모습은 어쩐지 앞모습보다 훨씬, 훨씬 더 슬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나눌 때 이야기가 아니다. 뭔가 다투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그럴 땐 상대와 마주 앉아서 얼굴을 보는 것보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훨씬 더 가슴 아프다. 왜 그런가. 모든 걸 혼자 짊어지는 모습이라 더 슬퍼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결국 혼자가 되는 모습이라서. 행복은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하듯, 슬픔은 누군가와 나눠야 덜어진다.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어 온 말을 오늘 어쩐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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