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30+ 그림일기]

by yoong

요즘 같은 날씨엔 안 걸으면 억울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틈나는 대로 걸어 다닐 기회를 노린다. 걸을 땐 귓가에 음악이 흘러야 제맛. 이어폰을 꽂고서 휘적휘적 걸음을 옮긴다.


스쳐가는 사람, 풍경, 그리고 가끔 시선 강탈하는 강아지(헤벌쭉). 흐르는 음악에 따라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매번 무대가 바뀐다. 영화 속 풍경, 책 속의 한 구절, 추억 속 한 장면, 혹은 반복되는 일상. 그러니 음악 선곡이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 중요한 음악 선곡을, 나는 운에 맡긴다. 운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작업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그득그득 담아 놓은 앨범을 선택하고선 'random'으로 재생하는 게 전부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모르겠다. 특별히 좋아라 하는 가수나 음악가의 앨범을 들을 때(그럴 땐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다)를 빼면, 되도록 음악은 그렇게 일부러라도 무작위로 만나는 게 좋다. 그게 좀 더 설레니까.


좋아하는 노래, 듣고 싶은 노래를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그때 그때 들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뭔가, 너무 쉽잖아. 그래서 당장 듣고 싶은 노래가 안 나와도 꾸욱 참고 기다린다. 꼭 맞는 노래가 나오는 그때를.


눈앞의 풍경, 코끝에 닿는 공기, 어깨 위 짐의 무게. 그 모든 상황과 꼭 맞는, 그 타이밍에 꼭 어울리는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때는 살짝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하다. 그 짜릿함을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우연의 일치로 '만날 수 있어서' 더더욱. 그렇게 꼭 맞는 노래와 만나는 시간 내내 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까지 드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 기막힌 타이밍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도 망설임 없이 무작위 재생을 선택.

https://plain.is/nightpup/578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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