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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May 10. 2023

더 많은 ‘사과’들의 목소리

그래픽노블 <까보 까보슈>를 읽고

 지난달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읽었다. 온갖 갈등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환대’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여러 자료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환대(歡待)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국립국어원 국어사전)

이 책에서는 상대가 누구든(외부인, 소수 집단, 사회적 약자 등) 환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자신의 장소/자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누군가 그 자리를 침해하는 순간 사회 안에서 그의 삶은 불안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자리’는 다양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자아, 인격, 한 사람으로 온전히 인정받고 돈을 벌며 살아갈 권리,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권리,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눌 권리, 그 사람 자체로 살아갈 권리이다. 우연히 주어진 성별, 인종, 국가, 출신 계급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이 아닌, 이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써나가는 저자이며 이 서사의 ’편집권‘은 타인이 아닌 오직 ’나‘의 소유이다.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나‘이니까 말이다. 책을 보며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나는 이 ’주체의 저자성’과 ’서사의 편집권’이라는 표현에 감동했다. 내 서사를 재밌게 편집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주체의 저자성’‘서사의 편집권’이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인간은 지구 위에서 사는 동물 중 가장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지능도 다른 동물에 비해 높은 모양이다. 하지만 자본이 종교가 된 사회, 타인에 의한 울타리가 인간을 둘러싸고 점점 좁혀오는 세상에서, 인간의 장소/자리가 불안해지는 고통은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에게 먼저 달려간다. 그리고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들 뒤로, 치열하게 또는 태연히 각자 주어진 생을 이어가는 인간 아닌 동물과 식물들이 있다. 

인간은 어떻게 비인간 동물과 식물을 통제하고 자본으로 교환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인간 아닌 생명의 생애를 통제하고 파괴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인간이 무엇인데, 인간 아닌 생명에 대해 권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기 때문일까?

 인간은 너무나 쉽게 다른 생명의 저자성을 박탈하고 편집권을 뺏는다. 서사의 가능성을 한계 짓는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이 자신의 저자성을 드러내는 순간 억압한다.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억압된 구조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고 버려진다. 어느 동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전부 살아낼 수가 없고, 어느 동물은 줄에 묶인 채 넓은 밭 한가운데 작물을 지키기 위해 놓여있다. 그곳엔 찌그러지고 먼지 쌓인 냄비 그릇과 낡은 플라스틱 집뿐이다. 또 어느 동물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양식장에서 새를 쫓으며 살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바다 위 양식장은 그 동물의 모든 세상이지만 태풍이 오면 그 동물들은 모두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어떤 동물들은 인간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며 전시된다. 어설프게 꾸며진 공간은 동물의 조상이 살던 곳과 비슷하지만 모두 가짜이고 닫힌 공간이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인간은 다른 생명의 서사를 자신의 이득과 편의, 여가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다른 동물의 타고난 본능을 이용하는 인간이란 동물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동물 아닐까. 인간들끼리 비인간 생명의 서사를 걸고 계약하지만, 그 계약에 인간 아닌 생명은 계약의 주체로 참여할 수 없다. 인간의 눈에는 생명이 아니라 돈이 보인다.

 숲의 나무들은 땅속의 뿌리로 소통하며 주변의 상황을 공유한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의 간격이 빽빽하면 빽빽한 대로, 하늘 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만큼 뻗어나간다. 꾸준히 이어지는 무자비한 가로수 가지치기와 개발로 인한 숲 벌목, 산림 파괴를 보면, 인간은 나무 또한 생명이 아닌 피곤한 일거리이자 자본으로 보고 있는듯하다. 먼 미래에 이 땅에 사는 어린이들은 어떤 숲을 보게 될까? 어떤 자연 유산을,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 어떤 생명 가치를 배울 수 있을까? [까보 까보슈]의 ’사과’처럼 자신의 저자성을 지키기 위해,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제압하려는 어른들 틈바구니를 뚫고 거침없이 줄기를 뻗어나가는, 자신의 서사성과 편집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과. 우리가 사는 세상엔 사과 같은 어린이, 어른, 그러니까 사과 같은 인간 동물이 더 많이 필요하다. 


                            

<까보 까보슈> 다니엘 페나크 원작 ㅣ

그레고리 파나치오네 각색, 그림 ㅣ윤정임 옮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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