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송아지 한 마리가 외양간에 있었다. 아버지께서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누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송아지가 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실쭉 웃는 듯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들과 소를 몰고 수덕산 기슭으로 향했다. 고삐가 풀린 소들은 자유롭게 다니며 풀을 뜯어먹었다. 남자애들은 고삐를 내팽개치고 저수지로 내달렸다. 홍일점인 나는 그만 보초병이 되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소들의 배는 남산만큼 불렀다. 소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누렁이였다. 다른 소들도 누렁이를 따라와서 내 주위에 둘러앉았다. 눈은 감고 있지만, 잠을 자는지 아닌 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되새김질을 쉬지 않고 하며 귀를 팔랑거린 것을 보면 눈만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그늘에서 책을 보다가 나도 그만 잠이 들었다.
여름 들녘은 파란 콩잎이 넘실댔다. 소가 좋아하는 것이 콩잎이다. 혀를 길게 빼고 콩잎을 단숨에 훑어 먹어치우면 큰 낭패였다. 넓은 바위 위에 서서 소가 콩밭으로 가지 못하게 단단히 망을 봐야 했다.
바닷가 마을은 여름이라 해도 참지 못할 만큼 덥지 않았다. 바닷물을 지나온 바람 속에는 소금기가 들어있었다. 나는 짭짜름한 바닷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누렁이도 그런 바람이 좋은지 코를 벌름거렸다.
저수지 쪽을 보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건만, 남자애들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들이 저수지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워낭소리가 멀리 울려 퍼졌다. 워낭소리를 들었을까. 얼마 후 저수지에서 개구리헤엄을 치던 아이들이 까만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잔뜩 부푼 배를 자랑이라도 하듯 소 한 마리가 앞장을 섰다. 친구들은 고삐로 자신의 소의 엉덩이를 "이랴!"하고 힘껏 때렸다. 아무리 맞아도 배가 남산만 하니 빨리 걸을 수 없었다.
앞서 가던 친구가 자신의 소의 걷는 흉내를 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였다. 소의 꼬리가 사정없이 친구의 뺨을 때렸다. 아무래도 고의로 꼬리를 날린 것 같았다. 친구는 약이 올라 고삐를 내리쳤다. 동그란 엉덩이에 두 줄의 고삐자국이 선명하게 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뿌지직 소리를 내며 무른 똥을 여러 차례 싸며 걸었다. 친구의 신발이 그걸 밟고 말았다. 그날 친구의 고삐가 수없이 오르내렸다.
고구마밭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경사진 그곳에서 소들이 줄달음칠지 걱정이 앞섰다. "너희들 오늘도 날뛰기만 해라. 가만히 안 둘 테다."라며 깜둥이들이 소리쳤다. 나도 고삐를 두어 번 손에 감고 누렁이에게 제발 얌전히 내려가라고 말했다.
가장 앞장서 가던 소 한 마리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소들도 일제히 뛰어 내려갔다. 좋은 길을 두고 남의 고구마밭을 왜 쑥대밭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맨 나중에 가던 누렁이도 뛰기 시작했다. 고삐를 잡고 끌려가다 이번에도 그만 나뒹굴고 말았다. 넘어지면서도 고구마밭주인이 변상을 요구할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넘어지면서 팔에 난 생채기 걱정 따위는 뒷전이었다.
한참 아래쪽에 널따란 평지가 있다. 소들은 그곳에 모여 우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서 있는 모습이 꼭 야단맞는 아이들 같았다. 남자애들은 약이 잔뜩 올랐다. 고삐를 잡아들고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죽을래?".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잔뜩 주눅이 들어 우리의 눈길을 피했다.
나도 고삐로 누렁이의 궁둥이를 힘껏 때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누렁이는 천연덕스럽게 엉덩이를 실쭉거리며 걸을 뿐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다. 다른 소들도 능청스럽게 천천히 걸어 하나씩 자기 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소가 어리숙해 보여도 눈치가 빠르고 고단수였다. 마을 가장 아래쪽에 있던 우리 집을 찾아 누렁이가 천천히 들어갔다. 그런 날은 워낭소리조차 잠잠했다.
꿈속에서 성난 얼굴을 한 고구마 주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었지만, 이상하게 고구마밭주인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내 팔에는 빨간색 약이 발라져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풀을 먹이러 가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지게에 풀을 지고 내려오시고 내가 고삐를 잡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누렁이가 고구마밭 옆에 나 있는 길로 능청스럽게 천천히 내려갔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초등학생인 우리만 있을 때는 천방지축 날뛰더니 아버지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 짐승이 말은 못 하지만 속은 있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날 이후 누렁이와 더 가까워졌다.
누렁이는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새끼도 쑥쑥 잘 낳았다. 소는 새끼를 낳던 날, 산고도 잊은 채 끝없이 혀로 핥아댔다. 그러면 새끼는 여러 차례 비척거리다 일어섰다. 그때부터 누렁이는 불면 날아갈세라 새끼를 키웠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다른 집 새끼들과 비교가 안 되었다.
학교에 갔다 왔더니 송아지가 없어졌다. 아버지가 새끼를 장에 가서 팔아버린 것이다. 하루 종일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도 울어서 입에서 하얀 거품이 흘러내렸다. 나를 보며 새끼를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김이 폴폴 나는 쇠죽을 갖다 줘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내 나이 서른에 엄마가 되었다. 산후조리를 해 주러 오신 시어머니가 소고기를 듬뿍 넣고 미역국을 큰 그릇에 담아 먹으라고 했다. 누렁이 때문이었는지 평소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후조리 때는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누렁이처럼 나도 자식을 정성으로 키웠다.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울며 밤새 간호를 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정은 같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서야 알았다.
수덕산 기슭에서 누렁이는 풀을 뜯고, 바위에 앉아 책을 읽던 아름다운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함께 풀을 먹이러 다녔던 친구들도 동화 같았던 여름방학 때의 추억을 잊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