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

by 오솔길


수요일과 일요일은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나온 재활용 물품으로 인해 집 뒤에 있는 재활용장은 난장판이다. 하지만 청소하는 분의 거친 손마디를 거치고 나면 어느새 말끔해진다.

몇 해 전의 일이다. 그때 청소하시는 분은 할아버지였다. 등이 굽은 분이라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입주민들이 그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는지 정리정돈을 잘했다. 그때만큼 재활용장이 깨끗한 적은 없었다.

우리 집 주방에서는 창문 너머로 재활용장이 환히 내려다 보인다. 설거지를 할 때면 이따금 창문 아래쪽을 살피곤 했다. 그러다 나뭇잎 사이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일라치면 얼마 담기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달려 나가곤 했다.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나 음료수를 들고나가서 드리면 두 손으로 받았다. 더운 날은 직접 담근 매실차를 가지고 내려갔다. 시원한 매실차를 단숨에 마시고 나서 활짝 웃으면 듬성듬성 빠진 이 탓에 마치 하회탈을 보는 것만 같았다.

외출하러 나갈 때면 혹시나 그분을 만날까 싶어 음료수를 챙겨 나갔다. 아파트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하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만나지 못하는 날이면 음료수는 어쩔 수 없이 내 차지가 되었다.

추석을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추석보너스가 입금되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왔다. 여러 개의 봉투에 돈을 담았다. 시어머니에게 드릴 봉투가 그중 가장 두툼했다. 그리고 차츰 봉투가 얇아져 갔다. 그때 주방 창문 아래 재활용장에서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봉투에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넣을까 하다 세 장을 넣었다. 겉봉에 이름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써서 들고나갔다.

봉투를 받아 든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하회탈처럼 웃으셨다. 멋쩍어하는 하회탈이었다. 며칠 후 단지에서 청소도구가 실린 수레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수레를 놓고는 고맙다며 90도로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마 되지 않아 부끄럽다고 말하고 서둘러 지나왔다. 몇 걸음을 떼었을 무렵이었다.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큰돈이지요.”

돌아서서 목례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 후 창문 너머로 수레를 끌고 가는 그분을 보면 ‘우리 같은 사람’이란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다음 명절에도 꼭 잊지 않고 챙겨야겠고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음 명절에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부터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궁금하던 차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로부터 할아버지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재계약이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이가 많은 것이 이유인 것만 같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만 원짜리 두 장을 더 넣어 드리지 못한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오늘도 집을 나서며 재활용장 쪽을 바라본다. 청소하는 분이 지나가고 난 자리는 세수를 막 끝낸 얼굴이다. 새로운 ‘우리 같은 사람’은 더 부지런한지 재활용장이 깨끗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