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탑사 대웅전에 기대서서 저 멀리 내려다보노라면 왠지 모를 슬픔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수천그루의 비자나무 숲에서 불어온 부드러운 바람이 그리움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독인다.
금탑사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바로 대웅전 왼편 처마 끝자락이다. 언제나처럼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에 서서 맑은 풍경소리를 듣는다. 넓은 마당 한편에 자리 잡은 석탑과 배롱나무 그리고 동백나무가 사이좋게 서 있다. 아! 명부전이 저만치 보인다. 그리운 이들이 머물러 있는 곳에 시선이 머문다.
세월이 흘러도 가시지 않은 그리움이 후드득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불어온 바람은 나를 스쳐지나 명부전으로 향하고 그들과 맺은 찰나와도 같았던 인연의 조각들이 하나 둘 모여 파란하늘 위에서 뭉게구름이 된다.
아버지가 가꾸시던 작은 화단에 작약 꽃봉오리가 올라올 무렵 어머니를 따라 이곳 금탑사로 왔다. 저마다의 소망을 담은 아름다운 등이 온통 하늘을 덮을 때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수많은 등 아래에서 어머니를 따라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때 내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분홍색깔의 배롱나무 꽃은 예나 지금이나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날린다. 오늘처럼 백일홍이 만발할 때는 넓은 마당의 주인이 석탑이 아니라 배롱나무이다.
비라도 내리려는 듯 구름이 낮아지는가 싶더니 한차례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그바람에 배롱나무 분홍빛 꽃잎들이 눈처럼 흩날리다가 한 송이가 내 앞에서 멈춘다. 저 멀리 명부전에 잠들어 있는 외삼촌이 내가 온 것을 알고 마당까지 달려 나온 것만 같다. 조심스레 꽃잎을 손에 쥐고 돌계단을 오른다.
돌계단을 올라가자 감로수가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잡이가 긴 동그란 바가지에 담아 마시자 혀끝에 단맛이 느껴진다. 정말 이름처럼 달디 달다. 꽃같이 곱던 시절의 내 어머니도 이 감로수로 목을 축였으리라.
또다시 돌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자세히 보니 참으로 아기자기 하다. 맑은 마음의 비구니 스님들이 고운 손으로 거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숙연하다.
이윽고 스님들이 머무는 처소가 나타난다. 처소 담장 아래 그늘에서 새하얗게 옥잠화가 피어나고 있다. 옥잠화 꽃향기가 코끝에 매달려 한참을 따라온다.
기다란 담장의 끝자락에서 동백나무 숲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커다란 동백나무들은 서로 기대어 햇살 한 조각조차 들이지 않는다. 서로 의지하여 자라다가 마침내 만나서 하늘을 가린 동백나무, 그 품속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넓고 아늑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려니 새들의 지저귐이 뚝 끊긴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나오는데 붉게 핀 동백꽃 한 송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 필 때를 놓치고 뒤늦게 홀로 피어있는 꽃을 보니 마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친구들보다 한참 늦게 튼 내 둥지에서 아들 하나와 딸 둘이 튼실하게 자랐다. 홀로 핀 동백꽃 같았던 시절, 시댁식구들 빼고는 아는 사람하나 없던 그 황량했던 도시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작은외할머니께서 계실만한 요양원을 알아보다가 내가 사는 곳에 적당한 요양원이 있어 오시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는 사람 한 사람만 있었으면 했던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적적했던 내 결혼생활에 유일한 즐거움이 요양원 가는 길이었으니 나는 지금도 수많은 요양원을 두고 그곳으로 오셨던 것을 고마워하며 살아간다. 아이들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넣어주시곤 하셨던 작은외할머니는 지금 이곳에 내가 온 것을 알까.
반짝이는 동백나무 잎을 만지며 오르다보면 또다시 비자나무 숲을 만난다. 천등산 중턱의 비자나무는 더 위풍당당하다. 며칠 전 태풍이 불었던 탓인지 비자나무 푸른 잎이 떨어져 수북하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길에도 몇 번의 태풍이 불어 닥쳤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수많은 등 아래에서 두 손을 모우고 기도하던 어머니였다. 강한 태풍을 이겨낸 비자나무의 소곤거림이 들려온다. 태풍이 지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태양은 더 빛나고 그 태양이 튼튼한 열매를 맺게 한다고.
내려오는 길,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던 곳, 그 명부전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오래된 감나무에 기대어 오늘따라 유난히 푸른 문살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외삼촌은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 언제나 스무 살 청년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모자는 행복한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움도 나무빛깔처럼 연할 때가 있고 진할 때가 있나 보다. 오늘은 유난히 그리움이 짙은 날이다. 내 그리움은 저 아래 펼쳐진 팔월의 검푸른 비자나무 숲을 닮았다.
내려오는 길에 비자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나이테를 넓혀가는 나무들 아래에 돗자리를 펼치고 막내와 나란히 누웠다. 비자나무를 만난 지 어느새 반세기를 넘겼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순서를 달리하여 하나 둘 떠나고 구순의 어머니만 남았다. 내 어머니의 막내 사랑이 그러하였듯이 나의 막내사랑도 유별나다. 대학 3학년, 한창 바쁠 시간인데 엄마를 위해 시간을 내 준 막내가 오래 전 내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팔을 뻗어 손을 잡아본다. 보들보들하고 작은 손이 간지럽다.
딸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비자나무 숲속을 가득 채운다. 때마침 강한 바람이 한바탕 훑고 지나가자 비자나무 푸른 열매가 비처럼 쏟아진다.
아득히 높은 나무 잎새 끝에는 아직도 수많은 열매들이 단단히 매달려 있다. 매달려 있는 것은 푸른 비자나무의 꿈이다. 가을이면 잘 익은 비자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로 숲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옆으로 길게 뻗은 비자나무 가지에 오랜 슬픈 그리움을 단단히 걸어두고서 천천히 숲을 빠져 나왔다.
그리움이 머물렀던 곳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어느새 둥지를 튼다. *
에세이 포레 2018.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