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를 나무잔 속의 글라스에 먹는 이유

과거 술을 들어서 팔던 시절 조금이라도 많이 줄려는 풍습이다.

by 유사쪼 yoosazzo

일본 여행에서 이자카야 또는 사케를 판매하는 술집에서 사케를 주문하는 경우, 먼저 메뉴에서 사케(브랜드)를 선택하고 다음에는 용량을 선택한다. 한국에서는 사케의 경우 보틀(720ml 병) 단위로 판매하지만, 일본에서는 병으로 판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그라스(글라스), 이치고, 니고, 보토르 이런 식으로 판매한다. 그라스가 약 90ml 전후, 이치고(一合)는 180ml, 니고(二合)는 360ml 그리고 보토르가 720ml이다. 물론 보토르 가운데는 300ml도 있다.


여기서 그라스는 영어 Glass를 일본어로 표현한 것이어서 잔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이치고와 니고는 용량단위라서 어딘가에 담겨 나와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용기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토쿠리(徳利)인데, 한국의 호리병 같은 모양으로 생겼다. 토쿠리는 도기로 되어 있어 사케를 담은 채로 따뜻하게 데울 수도 있지만, 최근에는 나마자케(생주)의 보급으로 인해 주석잔과 같이 개성을 살린 잔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이치고, 니고에서 이치, 니는 일(1), 이(2)를 뜻하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되는데 고(合)는 뭘까?. 고는 한국어로 '홉'이라고 한다. 옛날 쌀과 같은 곡물의 양을 측정할 때 쓰던 사각형 모양의 나무 그룻으로, 가로 8.5cm x 세로 8.5cm x 높이 5,6cm 정도의 크기다. 홉보다 더 큰 것을 '되'라고 하고, 되보다 더 큰 것을 '말'이라고 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옛날 속담을 생각하면 이해가 빨리된다. 4홉은 720ml 병(보토르)으로 일본어로는 욘고빙, 시고빙이라고 한다. 1,800ml는 1되인데 그래서 사케 큰 병을 '됫병'이라고 한다. 병이 크니까 클 대(大)를 넣어 댓병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사각의 나무 그릇을 일본어로 마스(升)라고 하는데, 홉(合 고) 마스가 있고 이것보다 작은 그릇인 작(勺 샤쿠) 마스가 있는데, 이는 1홉(이치고)의 1/10로 18ml이다. 따라서 이치고의 반인 90ml는 5작(五勺)이 된다. 이처럼 예전에 곡물의 양을 측정하던 나무 그릇의 사이즈가 지금 사케판매의 단위가 된 것은, 옛날에는 나무 그룻으로 액체의 부피도 측량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일본 모두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사케 주문 시 제일 작은 용량인 글라스 대신 옛날에는 5작의 마스잔을 사용한 것이다.


옛날도 아닌 현재 이자카야에서 마스잔에 술을 따르는 것은 유리 글라스가 없어서가 아니라 옛날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진에 있는 것처럼 마스잔에 글라스를 넣고 술을 따르는 방식을 못키리(もっきり)라고 한다. 이는 과거에 술을 들어 파는 방식인 일본어 모리키리(盛り切り)가 어원으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손님에게 줄려는 배려에서 나온 거다. 그래서 유리잔에 넘치게 따라서 마스잔에도 술이 차게 하는 것인데, 마스잔에 많이 찰수록 술집의 인심이 좋다는 뜻이다.


못키리로 된 잔을 먹을 때는 첫 번째로 글라스를 살짝 기울여 글라스에 가득 담긴 술을 조금 마스잔에 따르고, 두 번째는 글라스의 술을 다 마시고, 세 번째는 마스잔에 있는 남은 술을 글라스에 따라서 마시는 것이 바른 응용법이다. 이때 마스잔의 술을 그대로 입에 대고 마셔도 실례는 아니다. 마스잔은 편백나무로 만든 히노키마스(檜枡)와 사진처럼 옻칠을 한 누리마스(塗り枡)가 있는데, 옻칠을 한 것이 표면이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줘 격식 있는 자리나 고급술집에서 사용된다. 일본여행 시 못키리 방식으로 사케가 나오면 제대로 된 순서대로 한번 마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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