캇포(割烹)를 안다면 당신은 일식의 달인

료테이, 일본요리, 카이세키 등의 용어와의 차이와 유래를 알아보자.

by 유사쪼 yoosazzo

일식에서 '캇포'라는 단어만큼 정확한 뜻이 정립되지 않은 채 통용되는 단어도 드물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캇포를 설명할 때 료테이(旅亭 요정), 카이세키와 많이 비교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해하기 쉽게 이자카야와 카이세키의 중간이라고 한다. 이때 중간이라는 것은, 이자카야보다는 가격면에서 고급 버전이라는 뜻이다. 료테이라고 하면 과거 한국에도 있었던 요정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지만, 일본에서 료테이는 가장 고급 음식점으로 교토에는 아직도 많이 있다. 설명에서 용어를 잠깐 구분하면, 료테이와 이자카야는 식당의 운영방식 즉 업태에 가깝고, 카이세키와 캇포는 요리의 구성에 가깝다.


가끔 일본의 고급음식점에 붙는 일본요리라는 말은 단순히 일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카이세키와 같은 정찬 요리를 뜻하는 데, 브런치의 첫 글(일본에 일식이 없는 이유)을 참조하면 이해가 쉽다. 우선 캇포와 료테이의 차이는 요리를 먹는 장소와 요리를 내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료테이는 주로 개실(룸)에서 먹고, 일본의 전통 무희인 마이코를 불러 연회를 할 수 있다. 반면 캇포는 오마카세 스시야와 같은 10석 내외의 카운터에서 셰프와 마주하고 식사를 한다. 카이세키는 정찬 요리가 코스 식으로 나오는 것으로 료테이와 캇포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의 선술집으로 해석되는 이자카야와의 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캇포라는 일본어는 한자로 할팽(割烹)이라고 표기하는데, 할(割 카츠)은 호초(일식요리용 칼)로 베다, 자르다는 뜻이고, 팽(烹 호우)은 삶다는 뜻이다. 풀이하자면 칼로 자르고, 삶는 요리를 캇포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도 캇포를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칼 사용 안 하고 불로 끓이지 않는 요리가 어디 있을까 싶다. 캇포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맹자(孟子) 만장(萬章) 상(上)에, 伊尹以割烹要湯(이윤이할팽요탕)이라는 문장에 이미 등장한다. "이윤이라는 사람이 요리를 잘해 탕왕에게 벼슬을 요청했다"라는 뜻이다. 참고로 이윤은 중국 전국 시대의 재상으로 탕왕을 도와 덕치를 행한 인물로, 한문의 문장은 그러한 일이 있었냐고 맹자의 제자가 맹자에게 묻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에서 캇포라는 용어가 외식업계에 등장한 것은 에도시대 후기다. 에도시대 후기부터 메이지시대(1868-1912)를 거치며 에도요리라는 개념보다 상위요리를 캇포라고 불렀다. 하지만 음식점의 스타일로는 자리잡지 못했다. 그 당시까지의 고급요리의 간판 격인 카이세키를 즐기는 료테이(料亭)가 여전히 중심이었지만, 게이샤를 부르는 료테이는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메이지시대에 이어 열린 쇼와(昭和) 2년(1927년)에 교토기온에 하마사쿠(浜作)라는 식당이 오픈한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오사카에도 같은 이름의 하마사쿠라는 식당이 오픈한다. 사진은 교토 기온의 하마사쿠의 사진으로, 현재는 3대째인 모리카와 히로유키(森川裕之)상이 맡고 있다. 그리고 오사카의 하마사쿠는 유명한 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토(味の素) 회장의 권유로 도쿄 긴자에도 출점을 한다.


오사카 하마사쿠의 오너셰프인 시오미(塩見)상은 즉석 코료리(即席御料理) 그 가운데서도 니모노가 전문이었고, 교토의 모리카와(森川)상은 사시미 요리가 전문이었다. 어쨌든 이 두 걸출한 요리사들에 의해서 갓포스타일의 식당은 전국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사카시의 홍보 홈페이지에서도 캇포요리를 오사카에서 생겨났다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 하마사쿠라는 식당이 만들어낸 컨셉이 바로 이타마에 캇포(板前割烹)였다. 그 당시까지의 료테이는 방에서 식사를 하고, 음식은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요리를 해, 각 방을 전담하는 나카이(仲居)가 서버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타마에 캇포는 손님이 앉는 카운터석의 앞에서, 셰프들이 직접 요리했고 손님들은 이를 볼 수 있었다.


캇포는 정해진 코스도 있지만 단품주문도 가능했고, 무엇보다 손님과 요리사가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쉽게 말하면 현재 오마카세 스시야의 뒷주방과 이타마에 스페이스를 모두 튼 것을 생각하면 된다. 현재는 당연한 것이지만, 바로 눈앞에서 생선을 잡고, 이세에비를 요리하는 캇포식당의 퍼포먼스는 일본여행 온 찰리채플린도 매료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캇포스타일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막 공급되기 시작한 가스곤로로 뜨거운 물을 조리대에서 끓일 수 있게 되었고, 교통과 유통의 발전으로 신선한 전국의 생선들이 즉시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캇포요리의 발전에는 일본 부흥시대에 생겨난 전국의 고급식당들도 한몫했다. 당시 일본요리의 전문 요리사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도제에 의한 엄격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새로 오픈하는 고급 일본요리 식당들은 이 네트워크에 부탁하면,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칼로 생선요리를 잘하는 사람과 니모노요리(煮物 조리고, 끓이는 음식)를 잘하는 요리사 두 명을 한 세트로 식당에 보냈다고 한다. 당시의 일본요리 셰프들은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현재의 캇포식당에는 카운터석뿐만 아니라 개실이 있는 경우도 많고, 식당명에 우나기캇포, 스시캇포라는 식으로 캇포를 붙여 고급이미지를 내는 식으로 변형되었다. 하지만 식당명에 캇포라는 명칭을 넣는 이상, 캇포식당이 시작되었을 때의 취지인 요리인과 고객과의 직접 커뮤니케이션, 요리하는 모습을 콘텐츠화시켜 발전한 히스토리는 알아두고 접객함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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