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표를 내밀다

유년기

by YooTube

사표를 냈다. 특별히 회사에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놀고 싶어서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시작은 여행 계획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왕복 항공권을 끊었다. 약 2주가 조금 안 되는 일정이었다. 회사의 제도인 안식휴가(지만 사실은 내 휴가를 길게 이어서 쓸 수 있게 해 주는)를 활용해서 입사 후 처음으로 길게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니 조금씩 다른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세상에 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 나이에 내가 2주만 놀고 와서 다시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당시 내 나이 27살, 남들보다 일찍인 25살에 회사 생활을 시작해서 2년이 조금 넘게 지났을 때였다. 그때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은데 다시 시작하는 셈 치고 때려쳐버릴까? 그러다가 정말 사표를 냈다.


(봉투를 내밀며) "부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어허 왜 이래 이 사람이. 사표는 안 되니까 다시 생각해 봐." (사표를 찢는다)

"그러지 마세요.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안 돼. 가져오는 즉시 내 서랍에 보관만 하고 수리하지 않을 거야."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이런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그냥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몇몇 곳에 서명을 하고 장비 반납만 하면 끝이었다. 물론 사전에 면담을 하기는 했지만 사표를 써서 제출하거나 이런 일은 없었다. 하긴, 입사 후에 한 번도 결재서류 들고 기다린 적도 없었다.


직속 조직장 님과 면담을 할 때 그분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1년 동안 스페인도 가보고 했더니 결국 다 별거 아니더라. 지금 시간 버리면 후회할지도 몰라."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후회하더라도 직접 해보고 후회하고 싶어요."


이어서 갈 회사도 정해지지 않았고 당시 다니던 회사도 문제없이 나름 인정받으며 잘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들긴 했지만, 의외로 큰 걱정 없이 질러버렸다. 후회하면 어때. 27살인데. 나이가 깡패라는 말도 있잖아. 그래도 2년 3개월 동안 경험한 걸 잘 살리면 신입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첫 회사 생활이 끝났다. 내 유년기도 완전히 끝났다. 이후 다른 회사에 가려고 면접을 볼 때마다 "왜 그만뒀어요?"라는 질문을 들어야 했고, "더 늦기 전에 때려치고 놀아보고 싶었어요."라는 대답을 해야 했고, 다소 황당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봐야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마 퇴사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오히려 그때 퇴사할 걸 하는 후회가 남았을 거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는 게 낫다.


2010년 10월 11일에 퇴사를 했고, 10월 12일에 프랑스 파리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정말 지독히도 놀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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