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장 걱정이었던 것이 회식이었다. 드라마나 각종 매체 속 회식의 모습은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나도 넥타이를 머리에 묶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첫 회사의 첫 회식이 내 걱정 못지않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1차로 맛있는 것을 먹은 후, 이런 제안이 나왔다.
라리 가서 커피랑 케이크 먹을까요? 크레페 케이크 맛있는데.
그리고 정말로 라리에 갔다. 라리는 회사 근처에 있던 카페 이름이었다. 가서 자리를 잡고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그나저나 크레페 케이크는 그때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갔다. 아, 드라마 속 회식은 말 그대로 드라마 속일 뿐이구나. 아무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좋은 아침!" 하면서 출근하지 않듯이. 운 좋게도 첫 회사 덕분에 회식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
회식을 하면 보통 회사 돈으로 맛있는 것을 먹는다. 내 돈 내고 먹지 못할 비싼 거나 내 돈 내고 먹기 아까운 것들을 거리낌 없이 먹는다. 그리고 확실히 회식을 하고 나면 같이 한 사람끼리 친밀감도 많이 생긴다. 괜히 '식구'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같이 먹는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다. 그러니 원래 회식은 나쁠 것이 없는 거다. 아니, 오히려 기대되는 것이라 해야 할까. 이번엔 또 어디 가서 비싸고 맛있는 걸 먹을까 기대가 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것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르다. 아직도 드라마 속 회식 같은 것도 존재할 거다. 이후에 내가 있던 다른 조직에서는 회식을 하면 늘 룸을 하나 잡아놓고 담배를 엄청 피우면서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셨다. 도우미는 일절 부르지 않고, 오로지 술과 담배와 노래만 즐겼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폭력적인 환경이긴 했지만 사실 다닐만하니까 다녔던 거다. 그거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과의 자리라면 그런 자리도 견딜만한 것도 사실이다. 힘들긴 하지만.
문제는 회식이 아니라 회식 문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원래대로라면 즐거워야 할 회식이 이끌어가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현실. 보통 막내가 회식 장소를 잡고 그러는데 사실 그건 잘못됐다고 본다.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나. 혹시라도 본인이 잡은 곳을 사람들이 싫어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할 뿐이겠지. 오히려 회식은 그 주관하는 사람이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점 추천이나 예약 정도는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있겠지만 어쨌든 키는 주관하는 사람이 잡아야 한다. 뭘 하든 아님 뭘 먹든 주관하는 사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즐거운 회식을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서 요즘 내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매월 하는 회식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즐겁게, 조금 더 보람 있게 회사 돈을 쓸 수 있을 것인가가 한 달 중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었다. 조직이 작을수록 여기저기 움직이기 쉽기 때문에 회식의 모습이 더 다채로워진다.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유람선도 타고, 높은 전망대에도 올라가고, 꽃구경도 하는 등 늘 즐거운 시간을 계획한다. 예전 다른 조직에서는 프라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아직도 내 방에 서있는 건담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생각보다 어렵네 하면서도 회식 때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 재미있게 했었는데.
세상은 계속 변하고 회식의 모습도 점점 바뀌겠지만 회식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함께 무엇을 먹으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분야가 됐든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한다. 그래서 기왕이면 점점 더 많은 회사의 회식이 조금씩 더 즐거워졌으면 좋겠다. 매번 소고기만 먹을 수는 없잖나. (물론 비싼 소고기는 언제나 옳다) 이토록 중요한 회식을 왜 그렇게 소홀히 하는지. 각종 업무의 성공사례 말고도 회식 성공사례도 많이 공유되고 따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