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
첫 퇴사 후 2개월 동안 유럽 곳곳을, 그리고 나머지 1개월 동안은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며 국내 곳곳을 여행했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3개월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어느 한 곳이 좋으면 그냥 좀 더 머무르고, 마음에 안 드는 곳은 포기하고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 자유가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돈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고작 2년 3개월 회사 다니고 모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유효기간은 딱 3개월이었다. 심지어 그 모은 돈의 상당수는 퇴사하면서 대출금 상환에 썼으니. 기간 한정 자유가 끝난 후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아, 그래도 정말 정말 행복했던 3개월이었다. 첫 퇴사는 살면서 가장 잘 한 선택 3가지 안에 든다. (물론 이후에 다시 취업을 했고 잘 살아왔기에 결과적으로 하는 말이긴 하다.)
퇴사를 하면 퇴직금이 나온다. 입사를 하기 전에는 세금 같은 걸 상상 못 했듯이, 퇴사를 하기 전에는 퇴직금도 상상을 못 했다. 나는 얼마나 순진했는지.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돈이 생겼다! 그것도 2달치 월급보다도 많이. 보통 퇴직금은 나중을 위해 모으거나 그러지만 회사도 무작정 때려친 마당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모두 다 소진해야지. 어차피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 퇴사하면서 대출금을 갚고 나니 입사 전과 입사 후의 통장 잔고가 큰 차이가 없었지만(이걸 알아차렸을 때 괜히 슬펐다) 다행히 퇴직금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대학 때도 1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한 번 갔었다. 소중히 모았던 160만 원을 무슨 생각인지 생전 처음 만났던 동문회 선배의 추천에 따라 주식에 넣었고, 아무것도 모르니 방치했다가 주가지수가 처음으로 2,000을 넘었다기에 들여다보니 수익률이 100%길래 바로 팔았었다. 그리고 그걸 올인해서 꿈꿔오던 배낭여행을 갔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참 대책 없이 살아왔구나. 300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비행기, 기차, 숙소 등을 다 하니까 얼마나 궁핍했는지, 그래도 욕심 낸다고 꼭 보고 싶었던 음악회나 축구 경기를 보면 그 날은 싸구려 빵이나 초콜릿 몇 개로 버티는 등 힘든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에겐 퇴직금이 있다. 호스텔이 지겨우면 1인실을 쓸 수도 있고, 먹고 싶은 건 먹을 수 있고, 보고 싶은 것도 볼 수 있다. 사실 1인이 여행을 하면 초호화 호텔에 묵지 않는 이상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는다. 더 필요한 건 용기일 뿐이다.
자유는 돈이 있어야 생긴다. 최소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만 있다면 그때 자유로울 수 있다. 회사원이 되면 그런 자유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사실 안 그래도 넉넉한 환경 덕분에 자유로운 사람들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회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월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요인들도 많지만 일단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돈을 추구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 당연한 거고, 돈만 오로지 추구하는 게 나쁜 것이라는 점을 첫 회사 생활하면서 깨달았다.
퇴사를 하고 외국으로 나가면 그 어디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역시 퇴사 후 여행은 외국이 좋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완전 대중화되고 수많은 알림이 일상인 상황이라 조금은 더 방해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알림 역시 끄고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퇴사를 하면 그렇게 한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난 더 이상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의무도 없다.
이런 자유는 회사원이기에 가능했다. 사업이나 프리랜서 등이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원은 어느 한 곳에 소속되는 동안에만 일을 하고 그것을 내 의지에 따라 명확하게 끝을 낼 수 있다. 첫 번째 회사를 나온 후 외국에 있었던 2개월 동안 모든 것을 훨훨 털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박정현이 부른 <도착>이라는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깊은 잠을 자려해 구름 속에 날 가둔 채 낯선 하늘에 닿을 때까지. 낮밤 눈동자색 첫인사까지 모두 바뀌면 추억 미련 그리움은 흔한 이방인의 고향얘기. 잘 도착했어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아 차창 밖 흩어지는 낯선 가로수 한번도 기댄 적 없는
실연하거나 미치듯이 힘든 때도 아니었지만 나 역시 저런 멜랑콜리한 감정에 가끔 빠져 허우적대곤 했다. (20대에는 가끔 그랬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에는 그저 교과서 안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말이었다면 퇴사 후에 완전히 이해한 말이다.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안정된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후에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는 없었다. 때문에 다음 회사를 어떻게든 찾아서 가야 하는 건 내 책임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이런 자유와 책임을 경험해 본 것은 이후에 나에게 큰 자산이 됐다.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돈만을 추구하며 현재를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기엔 내 젊은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아깝고 세상엔 다양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많다. 결국 그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어차피 정답은 없고 내 방식대로 계속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첫 회사를 나온 후 깨달은 이것은 그 이후에도 계속 마음에 두며 살고 있는 내 회사생활의 방향이 되었다. 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이런 깨달음과 3개월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얻었으니, 돌이켜보면 참 괜찮은 사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