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간 한정 자유

청년기

by YooTube

첫 퇴사 후 2개월 동안 유럽 곳곳을, 그리고 나머지 1개월 동안은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며 국내 곳곳을 여행했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3개월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어느 한 곳이 좋으면 그냥 좀 더 머무르고, 마음에 안 드는 곳은 포기하고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 자유가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돈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고작 2년 3개월 회사 다니고 모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유효기간은 딱 3개월이었다. 심지어 그 모은 돈의 상당수는 퇴사하면서 대출금 상환에 썼으니. 기간 한정 자유가 끝난 후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아, 그래도 정말 정말 행복했던 3개월이었다. 첫 퇴사는 살면서 가장 잘 한 선택 3가지 안에 든다. (물론 이후에 다시 취업을 했고 잘 살아왔기에 결과적으로 하는 말이긴 하다.)


기차, 커피, 작은 노트북. 여행의 동반자들


경제적 여유로부터 오는 자유

퇴사를 하면 퇴직금이 나온다. 입사를 하기 전에는 세금 같은 걸 상상 못 했듯이, 퇴사를 하기 전에는 퇴직금도 상상을 못 했다. 나는 얼마나 순진했는지.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돈이 생겼다! 그것도 2달치 월급보다도 많이. 보통 퇴직금은 나중을 위해 모으거나 그러지만 회사도 무작정 때려친 마당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모두 다 소진해야지. 어차피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 퇴사하면서 대출금을 갚고 나니 입사 전과 입사 후의 통장 잔고가 큰 차이가 없었지만(이걸 알아차렸을 때 괜히 슬펐다) 다행히 퇴직금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대학 때도 1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한 번 갔었다. 소중히 모았던 160만 원을 무슨 생각인지 생전 처음 만났던 동문회 선배의 추천에 따라 주식에 넣었고, 아무것도 모르니 방치했다가 주가지수가 처음으로 2,000을 넘었다기에 들여다보니 수익률이 100%길래 바로 팔았었다. 그리고 그걸 올인해서 꿈꿔오던 배낭여행을 갔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참 대책 없이 살아왔구나. 300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비행기, 기차, 숙소 등을 다 하니까 얼마나 궁핍했는지, 그래도 욕심 낸다고 꼭 보고 싶었던 음악회나 축구 경기를 보면 그 날은 싸구려 빵이나 초콜릿 몇 개로 버티는 등 힘든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에겐 퇴직금이 있다. 호스텔이 지겨우면 1인실을 쓸 수도 있고, 먹고 싶은 건 먹을 수 있고, 보고 싶은 것도 볼 수 있다. 사실 1인이 여행을 하면 초호화 호텔에 묵지 않는 이상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는다. 더 필요한 건 용기일 뿐이다.


자유는 돈이 있어야 생긴다. 최소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만 있다면 그때 자유로울 수 있다. 회사원이 되면 그런 자유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사실 안 그래도 넉넉한 환경 덕분에 자유로운 사람들도 많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회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월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요인들도 많지만 일단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돈을 추구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 당연한 거고, 돈만 오로지 추구하는 게 나쁜 것이라는 점을 첫 회사 생활하면서 깨달았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

퇴사를 하고 외국으로 나가면 그 어디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역시 퇴사 후 여행은 외국이 좋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완전 대중화되고 수많은 알림이 일상인 상황이라 조금은 더 방해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알림 역시 끄고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퇴사를 하면 그렇게 한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난 더 이상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의무도 없다.


이런 자유는 회사원이기에 가능했다. 사업이나 프리랜서 등이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원은 어느 한 곳에 소속되는 동안에만 일을 하고 그것을 내 의지에 따라 명확하게 끝을 낼 수 있다. 첫 번째 회사를 나온 후 외국에 있었던 2개월 동안 모든 것을 훨훨 털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박정현이 부른 <도착>이라는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깊은 잠을 자려해 구름 속에 날 가둔 채 낯선 하늘에 닿을 때까지. 낮밤 눈동자색 첫인사까지 모두 바뀌면 추억 미련 그리움은 흔한 이방인의 고향얘기. 잘 도착했어 제일 좋은 건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아 차창 밖 흩어지는 낯선 가로수 한번도 기댄 적 없는


실연하거나 미치듯이 힘든 때도 아니었지만 나 역시 저런 멜랑콜리한 감정에 가끔 빠져 허우적대곤 했다. (20대에는 가끔 그랬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자유와 책임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에는 그저 교과서 안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말이었다면 퇴사 후에 완전히 이해한 말이다.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안정된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후에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는 없었다. 때문에 다음 회사를 어떻게든 찾아서 가야 하는 건 내 책임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이런 자유와 책임을 경험해 본 것은 이후에 나에게 큰 자산이 됐다.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돈만을 추구하며 현재를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기엔 내 젊은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아깝고 세상엔 다양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많다. 결국 그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어차피 정답은 없고 내 방식대로 계속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첫 회사를 나온 후 깨달은 이것은 그 이후에도 계속 마음에 두며 살고 있는 내 회사생활의 방향이 되었다. 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이런 깨달음과 3개월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얻었으니, 돌이켜보면 참 괜찮은 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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